[Neighbor] 2013년 8월호- 작은 공연장이 사는 법
  • 등록일2013.08.08
  • 작성자류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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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통점. 약도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색다른 힐링이다. 묘한 감동이 있다. 참신하다. 가격도 매력적이다. 배고픈 젊은 예술가들의 무대로 치부된 소규모 공연장이 달라졌다. 홍대와 대학로에 운집한 연고지 역시 확장됐다.

• 에디터 설미현

미리 말하건대 대공연장과 소극장의 우위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웅장함과 화려함, 최첨단의 시설 등에서 소규모 공연장은 결코 대공연장의 위용을 따라갈 수 없다. 소규모 공연장의 재미는 사실 다른 데 있다. 관객과 공연자 간의 긴밀한 호흡. 비싼 돈을 냈으니 어디 한번 잘하는지 두고 보겠다는 관객의 무례한 권위 따윈 없다. 연주자 역시 표정 하나까지 신경 써가며 심혈을 기울여 연주해야 한다. 그러니 그 감동이야 더욱 특별할 수밖에. 규모의 문제를 떠나 새로운 "맛"으로 승부하는 소규모 공연장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가장 가까운 소리, 하우스콘서트
이곳에 가려거든 약도를 숙지하는 건 필수다. 도곡동에 위치한 율하우스. 율하우스는 지하 1층에 마련된 소규모 공연장이다. 이곳의 주인장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박착수 대표. 집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꿈꾸던 그는 자신의 연희동 집 마루에서 "하우스콘서트"를 열었고, 인기에 힘입어 이곳 율하우스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집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콘셉트로 한 만큼 율하우스의 공연장은 가정집 거실처럼 편안하다. 이곳엔 좌석이 없다. 방석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규모 역시 30평 정도의 소규모다 보니 관객과 연주자 간의 표정과 호흡까지도 당연히 들킬 수밖에 없다. 연주자 입장에선 거리가 너무 가깝다 보니 더 긴장되고 연주가 어렵다고 애교 섞인 불만을 털어놓을 정도. 공연의 대부분은 클래식이지만 대중음악, 국악, 재즈, 퍼포먼스,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보통 한 달에 2회, 주로 금요일에 공연이 열리는데 8월 9일 8시에는 오보에 전민경, 피아노 유재연이 펼치는 하우스콘서트가 예정돼 있다. 이 곳의 또 다른 재미는 공연 후 이어지는 조촐한 와인 파티. 이때 관객과 연주자의 구분 없이 즉석 공연이 열리기도 하는데, 실제 공연에 버금가는 멋진 공연이 펼쳐진다고.

도심의 소음을 떠나
얼마 전 강원도에 이색적인 공연장 하나가 문을 열었다. 강릉시 명주동에 문을 연 "작은 공연장 단". 단은 1958년 지어진 근현대 건축물을 레노베이션한 것으로 원래는 교회 건물로 쓰이던 곳이다. 과거의 숨결과 현대의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 취지에 맞게 공연장은 물론 공연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 커피와 음악,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는 "명주 사랑채" 등 다양한 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타 공연장과는 차별화된 재미있는 프로그램 역시 눈에 띈다. 공연 후 즐기는 파티는 물론 예술 분야의 명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골목길 공감이야기", 지역 아티스트를 위한 무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강릉이라는 정겨운 공간 속에 둥지를 틀고 도시의 소음 대신 맛있는 음악을 전하는 곳, 그곳이 바로 작은공연장 "단"이다.

클래식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
클래식 공연장에 부는 "작은" 바람은 더욱 반갑다. 그동안의 클래식 공연은 예술의전당과 같은 대규모 공연장에 편중된 게 사실. 지나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소규모 클래식 공연장은 대중에게 보다 친근한 클래식을 선사하다. 예술의전당은 물론 클래식 악기 전문점, 연습실 등 클래식의 거리라 불려도 좋을 서초동 거리에 얼마 전 페리지홀 &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소규모 클래식 전용 홀과 갤러리로 이뤄진 페리지홀은 여느 공연장과는 좀 다른 모습인데 여유로운 좌석 배치 덕에 마치 극장에 온 듯한 기분마저 든다.
페리지홀 옆에 자리한 서울바로크챔버홀 역시 220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실내악, 살롱 오페라, 독주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공연장은 물론 카페, 실내악 및 개인 연습실 등도 마련되어 있다. 공연만을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전시도 보고, 와인 파티, 커뮤니티 모임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소규모 클래식 공연장의 변신은 더욱 매력적이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극장
광화문시대 401호엔 이름도 특별한 "세상에서 제일 작은 한평 극장"이 있다. 물론 극장 이름처럼 실제 한 평은 아니다. 20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은 복층 구조로 된 오피스텔로, 연극인이자 극장의 대표인 심철종 씨가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이다. 공연이 있는 날엔 주방이 무대가 되며 거실은 객석이 된다. 이곳에선 매주 월, 화, 수 9시 오픈런으로 <죽느냐 사느냐>가 공연된다. 이 모노 드라마의 주인공은 심철종 씨로 관람료는 2만원이다. 특이하게 공연 중에도 사진 촬영이 가능하며 관객이 1명이어도 공연은 진행된다고.

공연장과 기업 사이
지난 4월 문을 연 "LIG아트홀 합정"은 문화 소외 지역인 마포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기업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공연장의 경우 탄탄한 경제적 지원 덕에 보다 퀄리티 있는 공연을 만날 수 있따는 게 큰 장점. 총 190석으로 이루어진 LIG아트홀 합정에서는 8월 2일 모던 크리에이티브 재즈의 거장 빌리 하트 쿼텟의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LIG아트홀은 현재 강남, 부산, 합정에 이어 젊은 예술인들의 연습실이자 공연장인 "한남동 스튜디오 L"을 운영 중이다.
이 밖에도 올림푸스홀(8월 14일, 29일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시즌3), KT체임버홀 등 기업 메세나의 일환으로 운영 중인 소규모 공연장들은 보다 내실 있는 공연 프로그램으로 관객에게 어필하고 있다. 새로운 "맛"으로 승부하는 소규모 공연장의 독특한 매력은 중독성마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