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예향] 2013년 7월호- "하우스콘서트"로 세상에 음악 뿌리는 작곡가 박창수
- 등록일2013.08.07
- 작성자류혜정
- 조회1656
11년동안 "하우스콘서트"를 열며 음악이 세상의 편견없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일궈온 음악인 박창수씨. 지난해 전국 각지 공연장을 "습격"해 일주일간 100회 공연을 성사시켰던 그가 올해 7월 "하루 100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음악"을 나누기 위해서는 경제적 어려움도, 정신적 피곤함도 무릅쓰는 그를 만나 음악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정상필 프리랜서 기자
지쳐 있었다. 많이 고달픈 것 같았다. 지난해 7월 보란 듯이 전국의 공연장을 "습격"해 일주일 동안 100회 공연을 해내고 말았던 결기도 무뎌진 것처럼 보였다. 지난 5월10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율하우스"에서 하우스콘서트를 11년째 이끌고 있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박창수(49)씨를 만났다.
30평 규모의 작은 스튜디오는 이날 열린 347회 하우스콘서트를 앞두고 분주했다. 스태프들은 마이크를 점검하고, 악기를 설치하고 관객들이 앉을 바닥을 닦았다. 이날의 손님은 우리나라 재즈 1세대인 트럼펫 연주자 최선배 퀸텟.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드럼과 콘트라베이스, 피아노에 같은 재즈 1세대 알토 색소폰 연주자 김수열씨가 함께 했다.
공연 전 "율하우스" 건물 1층 카페에서 만난 박씨는 지난해 전국 21개 도시 23개 공연장에서 열린 "하우스콘서트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작전"에 대한 평가를 묻자 올해 계획부터 이야기했다. 7월12일 하룻동안 전국 100개 공연장에서 100개의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것이었다. 키워드는 여전히 "지방", "공연장"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일주일에 100개 공연이, 하루 100개 공연으로 바뀌었다. 박씨가 지방의 공연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국에 중극장 이상 규모의 공연장이 400곳입니다. 그런데 공연 일수가 일년에 열 번도 안 되는 곳이 태반이에요. 이렇게 번지르르한 공연장이 많은 나라는 없어요. 그런데 연주자들은 극장이 없어 공연을 못해요. 이건 정상이 아닌 거죠."
박씨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인재들의 연주 실력이 귀국 1~2년 후 부쩍 떨어지는 현상을 자주 목격했다. 연주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예술의 전당 대관 경쟁률은 4대 1에 달하는데 지방의 공연장들은 텅텅 비어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연주자들은 공연이 잡히면 1000만 원 이상을 스스로 지출한다. 기획, 포스터 비용은 물론 표를 사서 주변에 뿌리는 데 드는 돈이다. 분명 정상은 아니다.
비정상적인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박씨가 내놓은 해법 역시 간단하다. 연주자들은 지방으로 가면 되고, 지방의 공연장들은 문을 열어주면 된다. 그래서 나온 야심작이 "연간 5000회" 공연 계획이다. 이 목표는 "일주일 평균 100회" 공연이면 달성된다. 지난해 7월에 선보인 습격작전은 연간 5000회 공연을 위한 프리뷰 성격이었다. 연간 5000회가 전국의 공연장에서 이뤄진다면, 공연장에는 연중 공연이 생겨 좋고, 연주자는 연주를 할 수 있어 좋고, 지방 관객들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 좋은 윈-윈-윈 게임이다.
158개의 연주팀을 지방으로 보내는 것은 온전히 박씨의 몫이었다. 10년 동안 하우스콘서트를 운영하며 쌓았던 신뢰를 무기로 부탁했다. 더군다나 "노개런티"였다. 박씨는 사비 7500만원을 털어 연주팀의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를 댔다. 다음은 공연장 문 열기다. 150곳의 공연장을 발로 뛰어 관계자들을 설득해 23곳의 공연장 문을 열 수 있었다.
습격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그 일주일 동안에는 모두가 "윈-윈-윈"했다. 미디어들도 하우스콘서트를 주목했다. 중앙과 지역 언론을 불문하고 각종 신문, 방송, 잡지 등에서 관련 보도만 112회가 나갔다. 행사를 처음 기획하고 연주팀과 지방의 공연장 관계자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은 지난했지만 희망을 봤다. 특히 무대 위 바닥에 앉아 눈 앞에서 펼쳐지는 프로 연주자의 음악을 듣는 관객들의 진지한 눈빛에서 "연간 5000회" 공연의 원대한 계획이 이뤄질 날도 머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계획대로라면 한 해의 절반을 향하고 있는 지금쯤 2000회 안팎의 공연은 이뤄졌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올해 실현하려던 그의 계획은 "연간 5000회" 공연에서 "하루 100회" 공연으로 하향조정돼 있었다. 박씨가 지쳐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지만 목소리는 오히려 단호해졌고, 톤은 높아졌다.
"결국 문화의식의 문제인 겁니다. 어느 대학에 출강해 김연아의 행위가 예술인지 스포츠인지 논하라는 시험문제를 낸 적이 있어요. 90%가 예술이라고 답했어요. 동작이 아름답기 때문이라나. 아름다운 몸 동작을 보려면 무용이 낫지 않겠어요? 예술과 스포츠도 구분하지 못하는 게 우리 수준입니다."
습격작전의 성공으로 호의적이었던 공연장 관계자들은 시간이 흐르고 미디어의 관심이 뜸해지자 태도를 바꿨다. 이로써 연중 5000회 공연의 필수조건이었던 공연장 최소 100곳 섭외는 높은 벽에 부닥쳤다. 예산이 없다고 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은 클래식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박씨에게는 게을러서 일하기 싫다는 말로 들렸다. 결국 하루 100회 공연을 내건 "원데이 페스티벌"을 새 카드로 내밀었다.
박씨는 장기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언제까지 연주팀에 "노개런티"를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어서 이번에는 소정의 개런티를 주기로 했다. 개런티 치고는 결코 비싼 금액이 아니지만 끝내 예산 지출을 거절한 공연장들이 꽤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데이 페스티벌"에는 1억 2500만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는 이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금 모금과 하우스콘서트 공연 실황 CD 판매 등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쉽지 않은 목표다.
박씨는 "남은 예산을 쓰기 위해 연말에 대중가수를 불러 한 방에 몇 천만 원을 쓰면서 예산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며 "지방 사람들이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접할 기회가 없는 것이고 기회를 주는 것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것" 이라고 말했다. 의식 있는 관장을 둔 몇몇 공연장을 빼면, 예향이라는 광주와 호남도 더했으면 더했지 나을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공연장 관계자들을 강하게 묶고 있는 "게으름의 카르텔"을 깨야 했다. 그들의 의식부터 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다시 실감했다.
왜 박씨는 돈도 안되는, 그렇다고 수월해 보이지도 않는 피곤한 일에 매달리는 걸까. 하우스콘서트를 처음 열었을 때 자신의 집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융자한 은행 빚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등 개인적인 재정 상황 역시 빨간불인데도 말이다. 그는 "생각대로만 된다면 모두에게 다 좋은 일인 것이 뻔히 보이니까" 라고 답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고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어요. 낮은 문화의식 때문입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유명해지기 전 하우스콘서트에서 공연할 때 관객수가 30명이었어요. 외국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돌아오니 떼로 몰려왔어요. 왜 우리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만 열광해야 합니까. 사회 저변의 문화의식이 더 이상 저급해지지 않도록 막는 것,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올해 벌이려던 5000회 공연 계획은 "일단" 접었지만 희망마저 꺾인 것은 아니다. 박씨는 지금까지 하우스콘서트를 이끌어오면서, 또 지난해 행사를 치르면서 잠재된 힘을 보았다고 했다. 다름 아닌 콘서트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에서다. 하우스콘서트가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자 전국적으로 300여 개의 하우스콘서트가 열리고 있다는 점도 음악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다. 공급만 제대로 된다면 수요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주자들을 지방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도 그가 얻어낸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가 처한 현실은 고달프지만 절망에 빠지진 않았다. 게다가 한 가지를 계획하면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추진하는 스타일인 성격도 그에겐 장점이다. 하우스콘서트를 열겠다고 마음 먹은 서울예고 1학년 시절 이후 20년이 지나서 실행에 옮겼고, 10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싸우는 중" 이라고 했다. 맞아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강한 맷집으로 진득하게 달라붙는 파이터보다 더 무서운 상대가 있을까. 그가 지쳐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결기 마저 무뎌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날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재즈 공연에서는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연주를 선보인 한국 재즈계의 두 거장 최선배와 김수열을 향한 박수가 이어졌다. 연주자들이 퇴장하자 박씨가 관객 앞에 다시 섰다.
"멋지지 않아요? 사실 섭외를 시도하면서 걱정했었어요. 연세도 있으셔서. 그런데 역시 예술은 농익어야 하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힘에 부쳐서 그런 이유도 있을 테지만 강약조절에서 내공이 느껴집니다. 잘 늙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보여준 공연이었습니다. 저도 요즘 다소 지친 상태였는데 공연을 보면서 더 잘 싸워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 정상필 프리랜서 기자
지쳐 있었다. 많이 고달픈 것 같았다. 지난해 7월 보란 듯이 전국의 공연장을 "습격"해 일주일 동안 100회 공연을 해내고 말았던 결기도 무뎌진 것처럼 보였다. 지난 5월10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율하우스"에서 하우스콘서트를 11년째 이끌고 있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박창수(49)씨를 만났다.
30평 규모의 작은 스튜디오는 이날 열린 347회 하우스콘서트를 앞두고 분주했다. 스태프들은 마이크를 점검하고, 악기를 설치하고 관객들이 앉을 바닥을 닦았다. 이날의 손님은 우리나라 재즈 1세대인 트럼펫 연주자 최선배 퀸텟.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드럼과 콘트라베이스, 피아노에 같은 재즈 1세대 알토 색소폰 연주자 김수열씨가 함께 했다.
공연 전 "율하우스" 건물 1층 카페에서 만난 박씨는 지난해 전국 21개 도시 23개 공연장에서 열린 "하우스콘서트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작전"에 대한 평가를 묻자 올해 계획부터 이야기했다. 7월12일 하룻동안 전국 100개 공연장에서 100개의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것이었다. 키워드는 여전히 "지방", "공연장"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일주일에 100개 공연이, 하루 100개 공연으로 바뀌었다. 박씨가 지방의 공연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국에 중극장 이상 규모의 공연장이 400곳입니다. 그런데 공연 일수가 일년에 열 번도 안 되는 곳이 태반이에요. 이렇게 번지르르한 공연장이 많은 나라는 없어요. 그런데 연주자들은 극장이 없어 공연을 못해요. 이건 정상이 아닌 거죠."
박씨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인재들의 연주 실력이 귀국 1~2년 후 부쩍 떨어지는 현상을 자주 목격했다. 연주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예술의 전당 대관 경쟁률은 4대 1에 달하는데 지방의 공연장들은 텅텅 비어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연주자들은 공연이 잡히면 1000만 원 이상을 스스로 지출한다. 기획, 포스터 비용은 물론 표를 사서 주변에 뿌리는 데 드는 돈이다. 분명 정상은 아니다.
비정상적인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박씨가 내놓은 해법 역시 간단하다. 연주자들은 지방으로 가면 되고, 지방의 공연장들은 문을 열어주면 된다. 그래서 나온 야심작이 "연간 5000회" 공연 계획이다. 이 목표는 "일주일 평균 100회" 공연이면 달성된다. 지난해 7월에 선보인 습격작전은 연간 5000회 공연을 위한 프리뷰 성격이었다. 연간 5000회가 전국의 공연장에서 이뤄진다면, 공연장에는 연중 공연이 생겨 좋고, 연주자는 연주를 할 수 있어 좋고, 지방 관객들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 좋은 윈-윈-윈 게임이다.
158개의 연주팀을 지방으로 보내는 것은 온전히 박씨의 몫이었다. 10년 동안 하우스콘서트를 운영하며 쌓았던 신뢰를 무기로 부탁했다. 더군다나 "노개런티"였다. 박씨는 사비 7500만원을 털어 연주팀의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를 댔다. 다음은 공연장 문 열기다. 150곳의 공연장을 발로 뛰어 관계자들을 설득해 23곳의 공연장 문을 열 수 있었다.
습격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그 일주일 동안에는 모두가 "윈-윈-윈"했다. 미디어들도 하우스콘서트를 주목했다. 중앙과 지역 언론을 불문하고 각종 신문, 방송, 잡지 등에서 관련 보도만 112회가 나갔다. 행사를 처음 기획하고 연주팀과 지방의 공연장 관계자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은 지난했지만 희망을 봤다. 특히 무대 위 바닥에 앉아 눈 앞에서 펼쳐지는 프로 연주자의 음악을 듣는 관객들의 진지한 눈빛에서 "연간 5000회" 공연의 원대한 계획이 이뤄질 날도 머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계획대로라면 한 해의 절반을 향하고 있는 지금쯤 2000회 안팎의 공연은 이뤄졌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올해 실현하려던 그의 계획은 "연간 5000회" 공연에서 "하루 100회" 공연으로 하향조정돼 있었다. 박씨가 지쳐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지만 목소리는 오히려 단호해졌고, 톤은 높아졌다.
"결국 문화의식의 문제인 겁니다. 어느 대학에 출강해 김연아의 행위가 예술인지 스포츠인지 논하라는 시험문제를 낸 적이 있어요. 90%가 예술이라고 답했어요. 동작이 아름답기 때문이라나. 아름다운 몸 동작을 보려면 무용이 낫지 않겠어요? 예술과 스포츠도 구분하지 못하는 게 우리 수준입니다."
습격작전의 성공으로 호의적이었던 공연장 관계자들은 시간이 흐르고 미디어의 관심이 뜸해지자 태도를 바꿨다. 이로써 연중 5000회 공연의 필수조건이었던 공연장 최소 100곳 섭외는 높은 벽에 부닥쳤다. 예산이 없다고 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은 클래식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박씨에게는 게을러서 일하기 싫다는 말로 들렸다. 결국 하루 100회 공연을 내건 "원데이 페스티벌"을 새 카드로 내밀었다.
박씨는 장기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언제까지 연주팀에 "노개런티"를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어서 이번에는 소정의 개런티를 주기로 했다. 개런티 치고는 결코 비싼 금액이 아니지만 끝내 예산 지출을 거절한 공연장들이 꽤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데이 페스티벌"에는 1억 2500만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는 이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금 모금과 하우스콘서트 공연 실황 CD 판매 등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쉽지 않은 목표다.
박씨는 "남은 예산을 쓰기 위해 연말에 대중가수를 불러 한 방에 몇 천만 원을 쓰면서 예산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며 "지방 사람들이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접할 기회가 없는 것이고 기회를 주는 것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것" 이라고 말했다. 의식 있는 관장을 둔 몇몇 공연장을 빼면, 예향이라는 광주와 호남도 더했으면 더했지 나을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공연장 관계자들을 강하게 묶고 있는 "게으름의 카르텔"을 깨야 했다. 그들의 의식부터 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다시 실감했다.
왜 박씨는 돈도 안되는, 그렇다고 수월해 보이지도 않는 피곤한 일에 매달리는 걸까. 하우스콘서트를 처음 열었을 때 자신의 집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융자한 은행 빚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등 개인적인 재정 상황 역시 빨간불인데도 말이다. 그는 "생각대로만 된다면 모두에게 다 좋은 일인 것이 뻔히 보이니까" 라고 답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고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어요. 낮은 문화의식 때문입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유명해지기 전 하우스콘서트에서 공연할 때 관객수가 30명이었어요. 외국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돌아오니 떼로 몰려왔어요. 왜 우리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만 열광해야 합니까. 사회 저변의 문화의식이 더 이상 저급해지지 않도록 막는 것,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올해 벌이려던 5000회 공연 계획은 "일단" 접었지만 희망마저 꺾인 것은 아니다. 박씨는 지금까지 하우스콘서트를 이끌어오면서, 또 지난해 행사를 치르면서 잠재된 힘을 보았다고 했다. 다름 아닌 콘서트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에서다. 하우스콘서트가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자 전국적으로 300여 개의 하우스콘서트가 열리고 있다는 점도 음악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다. 공급만 제대로 된다면 수요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주자들을 지방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도 그가 얻어낸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가 처한 현실은 고달프지만 절망에 빠지진 않았다. 게다가 한 가지를 계획하면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추진하는 스타일인 성격도 그에겐 장점이다. 하우스콘서트를 열겠다고 마음 먹은 서울예고 1학년 시절 이후 20년이 지나서 실행에 옮겼고, 10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싸우는 중" 이라고 했다. 맞아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강한 맷집으로 진득하게 달라붙는 파이터보다 더 무서운 상대가 있을까. 그가 지쳐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결기 마저 무뎌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날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재즈 공연에서는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연주를 선보인 한국 재즈계의 두 거장 최선배와 김수열을 향한 박수가 이어졌다. 연주자들이 퇴장하자 박씨가 관객 앞에 다시 섰다.
"멋지지 않아요? 사실 섭외를 시도하면서 걱정했었어요. 연세도 있으셔서. 그런데 역시 예술은 농익어야 하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힘에 부쳐서 그런 이유도 있을 테지만 강약조절에서 내공이 느껴집니다. 잘 늙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보여준 공연이었습니다. 저도 요즘 다소 지친 상태였는데 공연을 보면서 더 잘 싸워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