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3년 6월 4일- [만물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
  • 등록일2013.06.25
  • 작성자류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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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로포비치는 1989년 11월 파리 아파트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뉴스를 듣고 베를린으로 날아갔다. 봇물 터지듯 인파가 오가는 찰리검문소 옆 장벽 아래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켰다. 연미복 대신 양복에 브이넥 스웨터를 받쳐 입고 경비병 의자를 빌려 앉았다. 사람들은 위대한 첼리스트의 연주를 꿈처럼 얻어 들었다. 청중과 포옹하는 거장에게 한 청년이 동전 한 닢을 건넸다. 거리의 악사에게 주듯. 거장은 "고맙다"를 연발하며 동전을 받았다.

▶베를린 장벽에 취재 왔던 TV 카메라들은 이 소련 망명객의 즉석 콘서트를 세계에 생중계했다. 그가 연주한 것은 "자유"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이념과 이념 사이 장벽을 무너뜨리는 소통의 축가였다. 음악은 그 자체로 선(善)이다. 신(神)의 미소요 음성이다. 가장 어둡고 낮은 곳까지 내려와 상처 받은 영혼을 어루만진다.

▶유대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2차대전 때 바르샤바 빈집에 숨어 살다 독일군 장교에게 들킨다. 호젠펠트 대위는 그에게 피아노를 쳐보라 한다. 스필만은 추위에 곱은 손가락으로 쇼팽을 연주한다. 어두운 방, 커튼 사이로 서광처럼 햇빛이 비쳐드는 피아노 곁에서 호젠펠트는 전쟁 전(前)의 교사이자 가톨릭 신자로 돌아간다. 그는 스필만에게 먹을 것을 대주며 돕는다. 그 혼자만을 위한 "쇼팽"의 감동은 그가 소련 포로수용소에서 숨질 때까지 함께했을 것이다. 영화 "피아니스트"가 된 실화다.

▶피아니스트 박창수는 2002년부터 서울 연희동 집 거실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사람들은 2만원을 내고 다채로운 음악가들과 호흡을 섞으며 공연을 즐긴다. 악기 떨림까지 마루를 타고 전해 온다. 어느 날 관객들이 깜짝 놀랐다.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거장 외르크 데무스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출연료가 적어도 5만달러인 그가 100만원 받고 온 것은 이 작은 콘서트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콘서트는 포이동으로 옮겨 모두 340회를 넘어섰다.

▶백건우는 북한 포탄이 쏟아진 이듬해 연평도를 시작으로 섬마을 콘서트를 이어 온다. 그가 엊그제 울릉도에서 배로 20분 더 가는 죽도에서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섬에 혼자 사는 중년 남자는 어머니가 남긴 피아노로 백건우가 반주한 어머니 애창곡 "매기의 추억"에 맞춰 노래했다. 나란히 앉아 베토벤 소나타 비창도 감상했다. 그는 10년 만에 처음 듣는 피아노 소리에 목이 멨다. 백건우도 눈시울을 적셨다. 두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어떤 것인지 일러주고 있었다.

글: 오태진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