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공감] 2013년 5월 6일- 하나 된 예술가와 관객 공연문화 새 지평 연다
- 등록일2013.05.07
- 작성자류혜정
- 조회1110
• 백승아 기자
웅장했다. 세상의 소리를 모두 합쳐놓은 듯한 신비감마저 들었다. 이제껏 공연장 객석에서 접하던 연주 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건반 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과 마룻바닥을 울리는 전율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4월 30일 늦은 저녁에 찾은 서울 도곡동의 녹음 스튜디오 ‘율하우스.’ 35평 남짓한 공간을 ‘비범한’ 피아노 선율이 가득 메웠다. 연주의 주인공은 작곡가이자 프리뮤직(즉흥연주) 연주가인 박창수(49)씨다. 박씨는 20분 넘게 피아노 앞에 앉아 즉흥적으로 연주를 이어갔다. 혼신의 힘을 기울인 탓일까? 피아노줄이 끊어져 있다.
“기존에 듣던 소리와는 많이 다르죠? 이게 바로 ‘하우스콘서트’의 묘미예요. 이곳에서는 연주자의 숨소리와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 미세한 음정의 변화까지 들을 수 있죠.”
연주를 마친 박창수씨가 말했다. ‘하우스콘서트’는 그가 들여온 공연 형식으로 말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의미한다.
일반 공연장과 달리 무대와 객석에 경계가 없다. 관객들은 의자 대신 마룻바닥에 둘러앉아 연주를 감상한다. 연주자와 관객들의 거리는 1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예술가와 관객들이 부딪치고 만들어내는 소리와 연주자의 숨결 하나도 예술로 승화된다. 예술가와 관객 간의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두를 위한 예술의 장 여는 게 꿈”
2002년 7월 서울 연희동 자택의 2층을 개조해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한 박씨는 2009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현재까지 345회의 공연이 열리는 동안 1,300명이 넘는 예술가와 2만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장르는 국악•성악•대중음악•클래식 등 다양하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조성진부터 가수 강산에, 미국 첼리스트 에드워드 애론 등 국적과 장르를 불문한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박씨는 하우스콘서트를 18세기 프랑스에서 주를 이뤘던 ‘살롱문화’와 1960년대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플럭서스 운동(Fluxus)’에 빗대어 설명했다.
소수의 지식인과 예술인, 부르주아들이 모여 토론하고 예술을 즐기던 살롱문화는 좁은 공간에서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예술을 향유하는 하우스콘서트의 형식과 유사하다. 또한 실험적 전위예술을 표방한 플럭서스 운동은 음악과 시각예술을 다양한 퍼포먼스로 표현하며 관객들을 끌어들였는데, 이는 무대와 객석이 분리돼 있는 일반 공연장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박씨는 “하우스콘서트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났다는 점과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종의 독립예술이자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는 점에서 살롱문화의 회귀”라고 말했다.
그는 온 국민이 예술을 쉽게 즐길 수 있는 장을 꿈꾼다. 일반클래식 공연이 어린아이의 입장을 제한하는 것과 달리 하우스콘서트는 8세 이하 어린아이의 참여도 열어두고 있다.
지난해 그가 일주일 동안 진행한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작전’도 그의 평소 신념과 맥을 같이한다. 지방의 공연장을 찾아가 무료로 공연을 열어준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는 전국 23곳의 공연장에서 일주일 동안 100회의 공연을 열었다. 물론 형식은 하우스콘서트와 동일했다. 관객들을 객석이 아닌 무대로 끌어올렸다. 57팀의 예술가들이 출연료 없이 무대에 올랐다.
박씨는 “전국에 400곳이 넘는 공연장이 있는데, 1년 동안 제대로 운영이 되는 곳은 극히 드물다”면서 “지방 공연장의 운영을 활성화하고 연주자들에게는 공연의 기회를 선사하는 동시에 지방 관객들에게 다양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진행된 기획”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불가능할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는 새로운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관계자들이 많아 극장을 섭외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박씨는 “관객들로부터 ‘정말 행복했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올해에도 특별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오는 7월 12일 하루동안 100회의 음악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예술가들의 섭외는 이미 끝났고, 지금은 극장들을 섭외 중이다. 아울러 그는 1년 동안 100개 극장에서 50회씩 공연을 올리는 꿈도 가지고 있다.
박씨는 하우스콘서트가 예술가와 관객들의 소통은 물론 교육의 장도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우스콘서트에서는 장난꾸러기 여덟 살 아이도 조용히 공연에 집중하죠. 자신이 무대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뤄지죠.”
여러 면에서 그의 작업은 복합적이다. 거대 자본으로부터 벗어난 독립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동시에, 다수와의 소통을 지향하고 모든 소리와 장면을 디지털 기계로 녹음하고 촬영하면서도 소리는 자연 그대로의 아날로그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국악•대중음악•클래식 등 장르의 벽을 허문 예술에 기존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공연의 옷을 입혔다는 면에서 그의 작업은 융•복합적이다.
박씨는 이러한 시도를 예술의 뿌리를 다지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뿌리가 튼튼하면 가지 끝에 열매가 제대로 열리기 마련이에요.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의 뿌리를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웅장했다. 세상의 소리를 모두 합쳐놓은 듯한 신비감마저 들었다. 이제껏 공연장 객석에서 접하던 연주 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건반 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과 마룻바닥을 울리는 전율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4월 30일 늦은 저녁에 찾은 서울 도곡동의 녹음 스튜디오 ‘율하우스.’ 35평 남짓한 공간을 ‘비범한’ 피아노 선율이 가득 메웠다. 연주의 주인공은 작곡가이자 프리뮤직(즉흥연주) 연주가인 박창수(49)씨다. 박씨는 20분 넘게 피아노 앞에 앉아 즉흥적으로 연주를 이어갔다. 혼신의 힘을 기울인 탓일까? 피아노줄이 끊어져 있다.
“기존에 듣던 소리와는 많이 다르죠? 이게 바로 ‘하우스콘서트’의 묘미예요. 이곳에서는 연주자의 숨소리와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 미세한 음정의 변화까지 들을 수 있죠.”
연주를 마친 박창수씨가 말했다. ‘하우스콘서트’는 그가 들여온 공연 형식으로 말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의미한다.
일반 공연장과 달리 무대와 객석에 경계가 없다. 관객들은 의자 대신 마룻바닥에 둘러앉아 연주를 감상한다. 연주자와 관객들의 거리는 1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예술가와 관객들이 부딪치고 만들어내는 소리와 연주자의 숨결 하나도 예술로 승화된다. 예술가와 관객 간의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두를 위한 예술의 장 여는 게 꿈”
2002년 7월 서울 연희동 자택의 2층을 개조해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한 박씨는 2009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현재까지 345회의 공연이 열리는 동안 1,300명이 넘는 예술가와 2만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장르는 국악•성악•대중음악•클래식 등 다양하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조성진부터 가수 강산에, 미국 첼리스트 에드워드 애론 등 국적과 장르를 불문한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박씨는 하우스콘서트를 18세기 프랑스에서 주를 이뤘던 ‘살롱문화’와 1960년대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플럭서스 운동(Fluxus)’에 빗대어 설명했다.
소수의 지식인과 예술인, 부르주아들이 모여 토론하고 예술을 즐기던 살롱문화는 좁은 공간에서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예술을 향유하는 하우스콘서트의 형식과 유사하다. 또한 실험적 전위예술을 표방한 플럭서스 운동은 음악과 시각예술을 다양한 퍼포먼스로 표현하며 관객들을 끌어들였는데, 이는 무대와 객석이 분리돼 있는 일반 공연장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박씨는 “하우스콘서트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났다는 점과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종의 독립예술이자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는 점에서 살롱문화의 회귀”라고 말했다.
그는 온 국민이 예술을 쉽게 즐길 수 있는 장을 꿈꾼다. 일반클래식 공연이 어린아이의 입장을 제한하는 것과 달리 하우스콘서트는 8세 이하 어린아이의 참여도 열어두고 있다.
지난해 그가 일주일 동안 진행한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작전’도 그의 평소 신념과 맥을 같이한다. 지방의 공연장을 찾아가 무료로 공연을 열어준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는 전국 23곳의 공연장에서 일주일 동안 100회의 공연을 열었다. 물론 형식은 하우스콘서트와 동일했다. 관객들을 객석이 아닌 무대로 끌어올렸다. 57팀의 예술가들이 출연료 없이 무대에 올랐다.
박씨는 “전국에 400곳이 넘는 공연장이 있는데, 1년 동안 제대로 운영이 되는 곳은 극히 드물다”면서 “지방 공연장의 운영을 활성화하고 연주자들에게는 공연의 기회를 선사하는 동시에 지방 관객들에게 다양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진행된 기획”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불가능할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는 새로운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관계자들이 많아 극장을 섭외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박씨는 “관객들로부터 ‘정말 행복했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올해에도 특별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오는 7월 12일 하루동안 100회의 음악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예술가들의 섭외는 이미 끝났고, 지금은 극장들을 섭외 중이다. 아울러 그는 1년 동안 100개 극장에서 50회씩 공연을 올리는 꿈도 가지고 있다.
박씨는 하우스콘서트가 예술가와 관객들의 소통은 물론 교육의 장도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우스콘서트에서는 장난꾸러기 여덟 살 아이도 조용히 공연에 집중하죠. 자신이 무대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뤄지죠.”
여러 면에서 그의 작업은 복합적이다. 거대 자본으로부터 벗어난 독립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동시에, 다수와의 소통을 지향하고 모든 소리와 장면을 디지털 기계로 녹음하고 촬영하면서도 소리는 자연 그대로의 아날로그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국악•대중음악•클래식 등 장르의 벽을 허문 예술에 기존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공연의 옷을 입혔다는 면에서 그의 작업은 융•복합적이다.
박씨는 이러한 시도를 예술의 뿌리를 다지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뿌리가 튼튼하면 가지 끝에 열매가 제대로 열리기 마련이에요.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의 뿌리를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