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2년 12월 12일- 스팅 공연 못지않은 ‘작은 무대’의 감흥
  • 등록일2013.01.03
  • 작성자류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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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의 음악다방
•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역시 스팅”이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되뇌었다. 지난 5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내한공연을 보고서다. 그의 공연을 본 게 세 번째인데, 볼수록 감흥이 더 커진다. 나이 들수록 멋있어지는 음악인을 들라면, 그를 다섯 손가락 안에 꼽겠다.
다음날인 6일 더욱 특별한 공연을 봤다. 전날 스팅 공연에 섰던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가 서울 도곡동 율하우스에서 ‘하우스콘서트’를 연 것이다. 가정집 거실처럼 아담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116㎡(35평) 넓이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열린 소규모 공연이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박창수씨가 2002년 자신의 단독주택 마루에서 시작한 ‘집에서 여는 콘서트’는 10년 동안 320여 차례 공연으로 이어져왔다. 이날 공연은 밀러 쪽에서 먼저 요청해왔다고 한다. 1990년 이후 스팅의 모든 앨범 녹음과 공연에 참여해온 밀러는 여러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독자적 활동도 펼쳐왔다.
누리집(www.freepiano.net)•트위터•페이스북을 통해 공연 정보를 알고 온 관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도 신발을 벗고 방석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110여명의 관객들이 가득 들어찼다. 혼자 온 이도 꽤 있었다.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밀러가 나왔다. 스팅 공연에 참여했던 바이올리니스트 피터 티켈도 함께였다.
둘은 사전준비 없이 즉흥으로 선곡하고 호흡을 맞췄다. 밀러가 갑자기 바흐의 ‘지(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기 시작하면, 티켈이 합류하는 식이었다. 둘은 밀러의 솔로 앨범 곡, 스팅의 곡, 클래식과 유명 팝을 연주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도, 격식도 없었다. 밀러가 연주 도중 손가락이 꼬여 실수를 하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밀러도 “1만명 앞에서도 공연을 많이 했지만, 100명 앞에서 하는 게 더 어렵네요”라며 웃었다. 공연 뒤 조촐한 와인 파티가 열렸다. 밀러와 티켈은 관객들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으며 벽을 완전히 허물었다.
좋아하는 와인을 뒤로 하고 지하철을 탔다. 서울 홍대앞 공연장 벨로주에서 열리는 모던록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감상회를 보러 가기 위해서다. 네이버 뮤직이 2010년 11월 이적의 음악감상회를 첫 순서로 시작한 이래 윤상•김동률•루시드폴•이한철•나얼•에피톤프로젝트 등 18팀의 음악감상회가 열렸다. 방송 활동보다 음악 자체에 더 몰두하는 음악인들이다. 지난 10월 십센치 음악감상회부터는 인터넷 생중계도 시작했다.
165㎡(50평) 넓이의 벨로주에 도착하니 공연이 한창이었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새로 내놓은 미니앨범 <1/10> 수록곡과 이전 히트곡들을 연주했고, 추첨을 거쳐 초대받은 24명의 관객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음악을 감상했다. 선택 받은 소수만 함께한 건 아니었다. 3만 여명의 누리꾼들이 인터넷 생중계를 보며 1만개 넘는 실시간 댓글을 달았다. 1시간여 공연을 마친 뒤 밴드 멤버들은 관객들과 뒤섞여 얘기를 나눴다. 공연한 이도 공연을 본 이도 모두 한 가족 같았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날, 규모는 작아도 더없이 따뜻한 두 공연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크고 화려한 공연도 좋지만, 이처럼 작고 소박한 공연이 더 큰 기쁨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