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Piano] 2011년 9월 - Review 박창수의 ‘프리뮤직 – On Screen’
  • 등록일2011.09.01
  • 작성자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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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박창수의 ‘프리뮤직 – On Screen’
8월 11일 ㅣ 금호아트홀


21세기 음악이 대상에 대한 근원적 해체, 사회 참여에 대한 철학적 근거, 작품에 대한 통시적 일관성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실험적 시도가 또 다른 파생된 가치를 낳을지, 그 자체로서의 시도에 의미를 두게 될 지도 미지수다. 더군다나 음악적으로 진보적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음악 자체의 성격과 구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외부적인 요소, 즉 사회적 · 정치적 필요에 의해 권력이 부여하는 기능적 역할에 의존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런 의문은 계속 된다. 고전주의 시각에서는 통일성이 결여된 부분적 파편화의 집합으로 정리될 수 있는 여지도 분명하게 남아 있다. 특히 미의 가치판단이 관습적 기준이나 낭만적 감성에 의존적이라면 작곡가의 음악적 특수성과 청중의 정신적 보편성을 연결하는 공통된 요소들은 여전히 소수의 사이에서만 통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자명한 사실 한 가지, 아방가르드가 이러저러한 논란 속에서도 계속해서 시도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예사조의 근간을 이루는 근본적 요소를 찾으려는 노력과 함께 ‘차이’를 인정하면서 음악적 현재를 축소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면 좀 더 다원적인 장(場)으로서의 실제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피아니스트 박창수의 ‘프리뮤직 – On Screen’은 열린 형식으로서의 해체미학이다. 이 무대는 무작위, 즉흥성, 우연에 의한 생성, 불확정성, 비반복성, 부조화 등의 전위(前衛)음악적 요소를 담고 있으며 작품의 통일성을 거부하는 가운데 다층적인 문제의식을 표출시킨다. 물론 고전적 형식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프리뮤직 – On Screen’이 기존의 미적 카테고리 내에서 이해되지 않는 한 낯설 수 있다. 칼 달하우스가 “음악사의 새 것은 반드시 이전의 것과 비교되는 의식 하에 결정된다”고 지적한 것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 완성된 작품을 기준으로 봤을 때 작곡가의 창작은 청중의 감상이 시작되는 시기와 맞물리는 가운데 갈무리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프리뮤직 – On Screen’은 다르다. 작곡가의 창작이 청중의 감상과 시공간적으로 동일하게 위치한다. 또 음악의 즉흥적 파편들이 다면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상태로 공존한다. 당연히 이 무대가 곡의 의미와 깊이, 변화에 대한 숙고의 과정을 겪고 나서야 가능하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작곡가가 고전적 형식의 해체 – 끝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생성 혹은 시작을 의미한다 – 를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는지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가늠해 볼뿐이지만 말이다.

글 ㅣ 장재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