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2011년 7월 19일 - ‘“무성영화 따라 흐르는 즉흥연주 더 친근”
- 등록일2011.07.19
- 작성자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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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 따라 흐르는 즉흥연주 더 친근”
‘프리뮤직 온 스크린’ 콘서트 여는 피아니스트 박창수
“프리뮤직이 낯설고 어렵다구요? 악보 없이 연주하는 즉흥음악, 프리뮤직도 눈으론 영화를 보면서 들으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박창수(47)씨가 무성영화 상영회를 겸해 프리뮤직을 연주하는 이색 음악회를 마련한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오는 8월4, 11, 18일 3회 열리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프리뮤직 온 스크린’시리즈를 통해 박씨는 무성영화의 해설자인 변사(辯士)처럼 무대에 오른다.
스크린에서 독일 무성영화 ‘일요일의 사람들’, ‘들고양이’, ‘아라비아의 하룻밤’이 상영되는 가운데, 박씨는 혼자 또는 다른 악기 연주자들과 협연하며 영화와 프리뮤직의 만남을 시도한다. 자택 거실, 녹음실 등 정식공연장 아닌 공간에서 288회 ‘박창수의 하우스콘서트’(이하 ‘하콘’)를 기획 진행해온 그가 연주자로서 펼치는 또 하나의 음악무대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2동주민센터 건너편, ‘하콘’공연장인 한 건물의 지하녹음실에서 지난 15일 박씨를 만났다.
“프리뮤직, 즉흥연주는 미리 준비된 곡을 연주하는 게 아니라 작곡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음악입니다. 재즈의 즉흥성이 미리 짜인 아우트라인 아래 이뤄진다면 프리뮤직은 그 아우트라인조차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장르고, 연주자도 10여명에 불과하지요.”
서울예고와 서울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박씨는 1986년 바탕골소극장에서 뮤직퍼포먼스 ‘카오스’를 처음 선보였고, 1999년 색소폰연주자 강태환과 듀엣으로 프리뮤직을 펼쳐왔다. 컴퓨터, 설치예술, 영상 등 다양한 장르와 접목한 새로운 음악을 펼치는 한편, 무용음악, 연극음악 등 무대음악 및 실험영화음악 작업을 병행해왔다.
“즉흥연주라도 내키는 대로 연주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연주 때 순간순간 아주 빠른 집중과 분석을 요합니다. 그냥 건반을 누른다면 그건 음악이 아니라 카오스지요.”
그는 “프리뮤직이 악보는 없다 해도 완전 무계획한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연주자가 관객과 교감하면서 현장분위기, 그날 날씨까지 음악에 담기 위해 촉각을 세우고 긴장하며 연주한다는 점에서 프리뮤직은 오히려 철저히 계산된 음악이라는 설명이다.
프리뮤직에선 잘 연주된 부분도 전체 구조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실패한 연주라고 그는 지적했다. 반대로 실수도 전체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면 그것조차 즉흥연주의 묘미라는 이야기다.
“음악회 직전 손가락을 다쳐 손가락 9개로 연주했다가 손가락 9개의 기법을 새롭게 터득한 적도 있습니다. 때로 일부러 석 달여 피아노를 멀리한 뒤 콘서트 때 서툰 손의 움직임까지 되살려내기도 합니다.”
그는 “다른 연주자와의 협연은 소통이라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며 “그러나 줄곧 독백하는 솔로 때와 달리 협연은 다른 연주자와 대화하듯 오히려 자연스럽게 풀리는 부분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노련한 즉흥연주자 간의 협연에선 첫 만남, 첫 협연이라도 사전에 협의하거나 리허설이라도 하듯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프리뮤직을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구성한 ‘프리뮤직 온 스크린’ 콘서트를 처음 연 것이 2003년 무렵. 프리뮤직자체를 낯설어하는 관객이 많아 보다 친밀한 만남을 위한 시도였다.
8월 독일 무성영화 상영회를 겸한 콘서트에 앞서 그는 연주 직전 한 번씩 영화를 볼 예정이다. 그는 “영화를 여러 번 보면 줄거리나 시간에 얽매여 프리뮤직의 순발력이 오히려 덜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영화 ‘일요일의 사람들’을 상영하는 8월4일은 피아노독주이며, 8월11, 18일 ‘들고양이’, ‘아라비아의 하룻밤’ 상영회 때는 해금의 강은일, 일렉트릭 음악의 치노 슈이치, 그리고 색소폰의 알프레드 하르트, 드럼의 파브리지오 스페라와 협연한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
2002년 자택서 첫 개최… 9년간 288회 진행
■박창수의 하우스콘서트 = 대형 공연장, 스타연주자 위주의 기존 음악회 문화에 이의를 제기하듯, 박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집의 2층 마루에서 처음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한 것이 2002년 7월. 2008년 10월의 201회 음악회부터 서울 강남구 도곡동 지하녹음실로 옮겨 지난 8일 공연까지 9년간 총 288회의 음악회가 진행됐다.
음대 교수, 유명콩쿠르 입상자 위주의 기획에서 벗어나 마니아들 사이에 입소문 난 실력파 연주 및 이질적 장르 간의 접목을 펼쳐왔다. 소규모 공연이지만 관객수는 매회 70∼80여명선. 영스타 피아니스트 김선욱씨의 경우, 리즈콩쿠르 우승전 중학생으로서 일찌감치 ‘하콘’서 이름을 알렸고,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씨와의 듀오콘서트 땐 120명 정원인 공간에 180여명이 몰렸다. 격주로 금요일마다 열리며, 첫회 연주자인 일본인 피아니스트 치노 슈이치를 비롯해 국내외 연주자 1200여명 및 가수 강산에 등 타 장르 예술인도 동참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