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MHO ART HALL] 2011년 Vol.3 - 즉흥 음악 피아니스트 박창수와의 대담
- 등록일2011.06.30
- 작성자박창수
- 조회2047
즉흥 음악 피아니스트 박창수와의 대담
박창수의 프리뮤직 on screen
프리뮤직, 침묵을 자유롭게 하다 Free Music Frees Silence
1920년대 한국에 무성영화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 영화 줄거리의 진행을 설명해주는 변사(辯士)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소리 없는 영화 속 배우들의 대화를 혼자 주고받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해내고, 정황을 설명해주던 변사는 무성영화 상영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였다. 그러나 말로써 풀어내는 변사의 역할을 음악이 대신한다면? 즉흥 음악 피아니스트 박창수가 <박창수의 프리뮤직 on screen>을 통해 1920년대 독일 무성영화 3편과 즉흥음악의 그 특별한 만남을 제안한다.
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음악사업팀 강선애
- 집에서 열리는 음악회 The House Concert의 기획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선생님의 ‘본업’은 작곡가 겸 즉흥 음악 피아니스트 입니다. 주력하고 계신 작업들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 저는 서울예고와 서울대에서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즉흥음악과 퍼포먼스는 14살(1978년)부터 시작했고요. 비교적 일찍 시작한 편입니다. 그동안 주로 실험성이 강한 무대음악 위주로 작곡을 해왔고 무성영화와의 작업은 2003년부터 40여 편 정도 한 것 같습니다.
- 그동안 금호아트홀에서는 클래식 유망주를 소개하거나 기성 연주자들의 무대를 마련해왔습니다. 무성영화와 즉흥음악은 클래식 전용홀인 금호아트홀로서는 처음으로 도전하는 매우 실험적인 무대입니다. 이번 연주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를 소개해주신다면요.
= 어느 시대나 실험정신은 예술의 발전에 분기점이 되어 왔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하우스 콘서트도
기본적으로 실험정신의 결과였습니다. 금호에서 저를 초청했을 때, 역시 금호가 예술정신을 구현
하는 특별한 곳임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해서 매우 기뻤습니다. 사실 금호에서의 초청은 이번이
두 번째 입니다. 2003년에 금요음악회에 초청받아서 저의 솔로 공연이 있었거든요.
- 즉흥음악인 프리뮤직이라는 장르는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프리뮤직이란 어떤 음악인가요? 재즈의 Jam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가장 간단히 말하자면 즉흥연주입니다. 미리 준비된 것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란 거죠. 작곡된 곡을 연주하는 행위와 차별화되는 것으로, 작곡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음악입니다. 재즈에서의 즉흥성이 미리 짜인 아우트라인(outline) 아래에서 이뤄진다면 프리뮤직은 그 아우트라인 조차도 없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잼의 경우는 두 사람 이상의 그룹연주를 말합니다. 프리뮤직도 그렇게 여러 명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고 이번 공연에서도 보시게 될 겁니다.
프리뮤직은 우리나라엔 아직 생소한 장르입니다. 현재 한국의 프리뮤직 연주자가 10여 명에 불과
한 데 비해 일본만 해도 1000명이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문화가 아
직 폭넓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소수 이더라도 뛰어난 연주자가 많다
는 것을 위안으로 삼습니다.
- 우리는 보통 작곡가가 고민을 거듭해서 구조적으로 잘 짜 놓은 작품의 연주를 듣습니다. 프리뮤직은 그려놓은 악보도 없고 연주하는 그 ‘순간’의 음악이기 때문에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프리뮤직은 악보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지만, 사실은 무대에서 매우 빠른 계산을 요구하는 음악입
니다. 실수가 생기더라도 그 자체마저 구조화 시킨다면 그것은 이미 실수가 아닌 것이 될 수도,
다시 말해 ‘실수도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잘 연주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전체 구조에
적합하지 않다면 그것은 실패한 부분이 될 수도 있지요. 결국 실수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조화
되느냐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는 겁니다.
- 프리뮤직 연주를 혼자 할 때와 달리 여러 연주자가 모일 때는 그 접근 방법도 조금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음악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할 텐데 연주 전에 미리 방향에 대해 의논을 하시는지요?
= 특별한 의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살아 있는 음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 개인의 취향일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어찌 보면 여러 명이 연주하는 것이 소통의 문제 때문에 더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듭니다만, 사실은 혼자 하는 연주가 가장 힘듭니다. 혼자 연주하는 경우를 독백으로 말할 수 있다면, 여러 명의 연주는 대화의 형식으로 보시면 됩니다. 간혹 노련하지 못한 연주자들의 조합일 때는 각자의 개성대로 연주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실패한 공연이라 판단하게 하지만, 경험이 많거나 노련한 즉흥 연주자들이 모여 연주할 때 관객들은 많이 협의가 이뤄진 즉흥연주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약속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 이렇게 여러 명이 연주하는 경우, 연주에 앞서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 연주에서 리드하는 사람이 있는지요?
= 대화를 하려면 분명히 리드해 가는 사람의 역할이 만들어지게 되지요. 처음에는 누구든 리더가 되겠다는 의식 없이 출발합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주도권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그 긴장감은 아주 색다른 묘미를 줍니다.
- 이번 공연에서는 음악만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함께 상영됩니다.
= 네, 이번 공연에는 세 편의 독일 무성영화를 상영하면서 연주합니다. <일요일의 사람들>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로 저 혼자 무대에 섭니다. <들고양이>는 코미디 영화로 저와 해금의 강은일씨 그리고 컴퓨터 음악의 치노 슈이치(일본)가 함께 연주합니다. 마지막 작품으로 <아라비아의 하룻밤>은 멜로드라마로 저와 색소폰의 알프레드 하르트(독일), 드럼의 파브리지오 스페라(이태리)가 함께 합니다.
이처럼 영화와 함께하는 프리뮤직은 현대적인 변사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변사는 무성영화의 내용 전개를 설명해주는 해설자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발전되었습니다. 유럽, 미국, 동남아 몇 곳에서도 존재하긴 했었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제대로 발전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변사 대신 무성영화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한 배경음악 정도의 역할이 정통 클래식 연주의 형태로 진행되었고, 현재 간혹 상영되는 경우도 대체로 이런 형식을 띠고 있지요. 저는 바로 여기서 무성영화와 프리뮤직과의 작업에 착안했습니다. 오래된 고전의 영상물에 가장 실험성이 강한 프리뮤직을 접목하는 이 작업은 유럽, 미국 등의 국가에서 연주하는 형태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게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 즉흥연주가 ‘변사’의 역할을 한다면 연주자가 영화의 구성을 미리 알고 있어야 영상에 맞는 연주가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음악 또한 완전한 즉흥 보다는 영화에 맞게 미리 구성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 연주하는 형태에 대한 실험을 몇 가지 해봤습니다. 전혀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상영과 동시에 공연을 하는 것, 그리고 미리 영화를 수십 번 보고 연주를 하는 것 등을 말이죠. 결국 저는 내용 파악을 위해 영화를 한 번 정도 보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영화의 내용은 미리 파악하더라도 그에 대한 사전 준비는 하지 않는 것이 저의 원칙입니다. 미리 생각을 하고 연주하는 경우는 오히려 현장성이 약화된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인데요, 프리뮤직은 가장 날것의 상태일 때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프리뮤직이 무성영화와 같이 이야기 전개가 있는 영상을 만났을 때, 그 흐름을 음악으로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장면을 세부적으로 표현해내려 한다면 음악 자체의 완성도는 떨
어질 수 있을 것 같고, 영화와 완전히 동떨어져서도 안될 것 같습니다.
= 설명이 조금 복잡해질 거 같아 말을 아끼게 되는데요, 전혀 다른 두 언어적 방식이 만나 새로운
예술 형태를 찾는다고 할까요? 다시 말해 영화를 도와주는 또는 음악을 도와주는 도구가 아닌 또
다른 새로운 덩어리를 제시하는 거죠. 그것은 또한 현재에 맞는 예술 형태의 제안이 될 수도 있
다는 생각입니다.
- 이번 공연을 어렵게 느낄 관객들에게 공연관람의 Tip을 알려주세요.
= 프리뮤직과 무성영화를 접목하게 된 계기는 프리뮤직이 어렵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제 공연에 오시는 분들이 많이 어려워하다가도 이상하게 영화와 함께 할 때면 그런 얘기를 안 하시더군요. 아마도 영상물에 집중하게 되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영상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음악이 영화와 하나를 이루게 되거든요. 그러니 그냥 영화에 집중하시면 결국 자연스럽게 음악이 함께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창수의 프리뮤직 on screen
프리뮤직, 침묵을 자유롭게 하다 Free Music Frees Silence
1920년대 한국에 무성영화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 영화 줄거리의 진행을 설명해주는 변사(辯士)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소리 없는 영화 속 배우들의 대화를 혼자 주고받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해내고, 정황을 설명해주던 변사는 무성영화 상영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였다. 그러나 말로써 풀어내는 변사의 역할을 음악이 대신한다면? 즉흥 음악 피아니스트 박창수가 <박창수의 프리뮤직 on screen>을 통해 1920년대 독일 무성영화 3편과 즉흥음악의 그 특별한 만남을 제안한다.
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음악사업팀 강선애
- 집에서 열리는 음악회 The House Concert의 기획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선생님의 ‘본업’은 작곡가 겸 즉흥 음악 피아니스트 입니다. 주력하고 계신 작업들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 저는 서울예고와 서울대에서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즉흥음악과 퍼포먼스는 14살(1978년)부터 시작했고요. 비교적 일찍 시작한 편입니다. 그동안 주로 실험성이 강한 무대음악 위주로 작곡을 해왔고 무성영화와의 작업은 2003년부터 40여 편 정도 한 것 같습니다.
- 그동안 금호아트홀에서는 클래식 유망주를 소개하거나 기성 연주자들의 무대를 마련해왔습니다. 무성영화와 즉흥음악은 클래식 전용홀인 금호아트홀로서는 처음으로 도전하는 매우 실험적인 무대입니다. 이번 연주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를 소개해주신다면요.
= 어느 시대나 실험정신은 예술의 발전에 분기점이 되어 왔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하우스 콘서트도
기본적으로 실험정신의 결과였습니다. 금호에서 저를 초청했을 때, 역시 금호가 예술정신을 구현
하는 특별한 곳임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해서 매우 기뻤습니다. 사실 금호에서의 초청은 이번이
두 번째 입니다. 2003년에 금요음악회에 초청받아서 저의 솔로 공연이 있었거든요.
- 즉흥음악인 프리뮤직이라는 장르는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프리뮤직이란 어떤 음악인가요? 재즈의 Jam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가장 간단히 말하자면 즉흥연주입니다. 미리 준비된 것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란 거죠. 작곡된 곡을 연주하는 행위와 차별화되는 것으로, 작곡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음악입니다. 재즈에서의 즉흥성이 미리 짜인 아우트라인(outline) 아래에서 이뤄진다면 프리뮤직은 그 아우트라인 조차도 없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잼의 경우는 두 사람 이상의 그룹연주를 말합니다. 프리뮤직도 그렇게 여러 명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고 이번 공연에서도 보시게 될 겁니다.
프리뮤직은 우리나라엔 아직 생소한 장르입니다. 현재 한국의 프리뮤직 연주자가 10여 명에 불과
한 데 비해 일본만 해도 1000명이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문화가 아
직 폭넓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소수 이더라도 뛰어난 연주자가 많다
는 것을 위안으로 삼습니다.
- 우리는 보통 작곡가가 고민을 거듭해서 구조적으로 잘 짜 놓은 작품의 연주를 듣습니다. 프리뮤직은 그려놓은 악보도 없고 연주하는 그 ‘순간’의 음악이기 때문에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프리뮤직은 악보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지만, 사실은 무대에서 매우 빠른 계산을 요구하는 음악입
니다. 실수가 생기더라도 그 자체마저 구조화 시킨다면 그것은 이미 실수가 아닌 것이 될 수도,
다시 말해 ‘실수도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잘 연주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전체 구조에
적합하지 않다면 그것은 실패한 부분이 될 수도 있지요. 결국 실수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조화
되느냐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는 겁니다.
- 프리뮤직 연주를 혼자 할 때와 달리 여러 연주자가 모일 때는 그 접근 방법도 조금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음악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할 텐데 연주 전에 미리 방향에 대해 의논을 하시는지요?
= 특별한 의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살아 있는 음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 개인의 취향일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어찌 보면 여러 명이 연주하는 것이 소통의 문제 때문에 더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듭니다만, 사실은 혼자 하는 연주가 가장 힘듭니다. 혼자 연주하는 경우를 독백으로 말할 수 있다면, 여러 명의 연주는 대화의 형식으로 보시면 됩니다. 간혹 노련하지 못한 연주자들의 조합일 때는 각자의 개성대로 연주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실패한 공연이라 판단하게 하지만, 경험이 많거나 노련한 즉흥 연주자들이 모여 연주할 때 관객들은 많이 협의가 이뤄진 즉흥연주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약속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 이렇게 여러 명이 연주하는 경우, 연주에 앞서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 연주에서 리드하는 사람이 있는지요?
= 대화를 하려면 분명히 리드해 가는 사람의 역할이 만들어지게 되지요. 처음에는 누구든 리더가 되겠다는 의식 없이 출발합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주도권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그 긴장감은 아주 색다른 묘미를 줍니다.
- 이번 공연에서는 음악만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함께 상영됩니다.
= 네, 이번 공연에는 세 편의 독일 무성영화를 상영하면서 연주합니다. <일요일의 사람들>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로 저 혼자 무대에 섭니다. <들고양이>는 코미디 영화로 저와 해금의 강은일씨 그리고 컴퓨터 음악의 치노 슈이치(일본)가 함께 연주합니다. 마지막 작품으로 <아라비아의 하룻밤>은 멜로드라마로 저와 색소폰의 알프레드 하르트(독일), 드럼의 파브리지오 스페라(이태리)가 함께 합니다.
이처럼 영화와 함께하는 프리뮤직은 현대적인 변사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변사는 무성영화의 내용 전개를 설명해주는 해설자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발전되었습니다. 유럽, 미국, 동남아 몇 곳에서도 존재하긴 했었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제대로 발전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변사 대신 무성영화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한 배경음악 정도의 역할이 정통 클래식 연주의 형태로 진행되었고, 현재 간혹 상영되는 경우도 대체로 이런 형식을 띠고 있지요. 저는 바로 여기서 무성영화와 프리뮤직과의 작업에 착안했습니다. 오래된 고전의 영상물에 가장 실험성이 강한 프리뮤직을 접목하는 이 작업은 유럽, 미국 등의 국가에서 연주하는 형태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게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 즉흥연주가 ‘변사’의 역할을 한다면 연주자가 영화의 구성을 미리 알고 있어야 영상에 맞는 연주가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음악 또한 완전한 즉흥 보다는 영화에 맞게 미리 구성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 연주하는 형태에 대한 실험을 몇 가지 해봤습니다. 전혀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상영과 동시에 공연을 하는 것, 그리고 미리 영화를 수십 번 보고 연주를 하는 것 등을 말이죠. 결국 저는 내용 파악을 위해 영화를 한 번 정도 보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영화의 내용은 미리 파악하더라도 그에 대한 사전 준비는 하지 않는 것이 저의 원칙입니다. 미리 생각을 하고 연주하는 경우는 오히려 현장성이 약화된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인데요, 프리뮤직은 가장 날것의 상태일 때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프리뮤직이 무성영화와 같이 이야기 전개가 있는 영상을 만났을 때, 그 흐름을 음악으로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장면을 세부적으로 표현해내려 한다면 음악 자체의 완성도는 떨
어질 수 있을 것 같고, 영화와 완전히 동떨어져서도 안될 것 같습니다.
= 설명이 조금 복잡해질 거 같아 말을 아끼게 되는데요, 전혀 다른 두 언어적 방식이 만나 새로운
예술 형태를 찾는다고 할까요? 다시 말해 영화를 도와주는 또는 음악을 도와주는 도구가 아닌 또
다른 새로운 덩어리를 제시하는 거죠. 그것은 또한 현재에 맞는 예술 형태의 제안이 될 수도 있
다는 생각입니다.
- 이번 공연을 어렵게 느낄 관객들에게 공연관람의 Tip을 알려주세요.
= 프리뮤직과 무성영화를 접목하게 된 계기는 프리뮤직이 어렵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제 공연에 오시는 분들이 많이 어려워하다가도 이상하게 영화와 함께 할 때면 그런 얘기를 안 하시더군요. 아마도 영상물에 집중하게 되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영상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음악이 영화와 하나를 이루게 되거든요. 그러니 그냥 영화에 집중하시면 결국 자연스럽게 음악이 함께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