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ILHOLIC] 2009년 12월 -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음악회 House Concert
- 등록일2009.12.04
- 작성자박창수
- 조회2327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음악회
House Concert
Editor 문지윤 photographer 조엘김 cooperation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
지난 11월, 에디터는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는 역삼동 Boda 스튜디오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이미 묵직한 첼로소리와 구슬픈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중국 전통악기 얼후의 떨림이 느껴졌다. 1978년산 뉴욕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그 곳엔 중국 전통악기 얼후의 연주가 지아펭팡(Jia Pen Pang), 일본 피아니스트 나오유키 온다(Naoyuki Onda), 한국 첼리스트 김영민의 조화로운 연주,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마음으로 연주하듯 한 끝의 움직임도 없이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고 있는 하우스 콘서트의 주인장 박창수 대표가 있었다.
말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 ‘하우스 콘서트’
여름이든 겨울이든 해가 뉘엿뉘엿 지고 마음에 여유가 찾아오는 매주 금요일 밤이면 연희동 또는 역삼동, 사당동, 도곡동 등 서울 어딘가에서 말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하우스 콘서트를 경험할 수 있다. 그곳에선 사람들이 마룻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와인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기대에 찬 듯 반짝반짝 빛을 내며 두리번거리는 눈빛은 과연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곧이어 연주자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모든 시간은 멈춘 듯 모두 하나의 세계로 몰입하기 시작한다. 관객과 연주자의 호흡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 나가는 세계, 하우스 콘서트의 세계로 말이다.
하우스 콘서트란 옛날 서양의 살롱 음악에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16~18세기 유럽 상류 사회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가를 집으로 불러 음악을 감상하며 사적인 모임을 가졌는데 그것이 살롱 음악으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2003년에 하우스 콘서트의 물결이 일어났는데, 유럽으로 음악 유학을 떠났던 유학생들의 귀환에 의해 국내에서도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한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는 2002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7년 동안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록커 강산에, 피아니스트 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행위예술가 무세중 선생 등 지금까지 500여명이 넘는 아티스트의 공연과 1만명이 넘는 관객이 하우스 콘서트를 다녀갔다. 하우스 콘서트를 기획한 박창수 대표는 하우스 콘서트의 매력에 대해 “좋은 연주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느끼며 함께 호흡할 수 있어 연주자와 관객의 멀었던 벽이 많이 무너질 수 있었던 점, 그리고 뒤풀이인 와인파티를 통해 연주자와 관객들이 소통할 수 있는 점이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하우스 콘서트가 자리매김을 하기까지에는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연희동 자택에서 처음 열게 된 공연은 주변 동네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연주자들을 섭외하는데 수차례 거절을 당하는 어려움 또한 수없이 겪었다. “처음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할 때 연주자를 섭외하는데 해마다 천만원 넘게 손해를 봤습니다. 아울러 이름난 연주가들의 셀 수 없는 출연거부보다 더 고민이었던 점은 진짜 음악을 사랑하는 관객들의 마음에 드는 연주자들을 섭외하는 거였죠” 라고 회상했다. 이런 어려움을 모두 참아내면서 하우스 콘서트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우선 양질의 음악 공연을 관객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주를 듣는 관객들의 행복과 연주를 하는 연주가들의 행복이 함께 소통되는 것에 대한 보람이 컷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며 웃는 그의 미소 속에서 하우스 콘서트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하우스 콘서트를 기획하고 모든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는 박창수.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6살 때 처음 작곡을 하고, 피아노 레슨을 단 한번 받은 후 독학으로 피아노를 마치고,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수석 입학을 한 그는 2003년 전주 영화제에서 국내 최초로 무성영화를 틀어놓고 즉흥 연주를 펼쳐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해마다 한두 차례씩 독일과 일본에서 연주 초청을 받고 지난해 프랑스 국영 라디오에서 그의 음악을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할 정도로 외국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처럼 해와음악계에서도 인정을 받는 그가 시작한 하우스 콘서트는 입소문을 타고 일파만파 퍼져나가 현재 이런 하우스 콘서트가 전국에 100여개 정도로 늘어났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기뻐하는 것보단 걱정이 조금 더 앞선다고 한다. “2002년 하우스 콘서트가 생긴 이래 전국에 100여개의 하우스 콘서트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뻐하기에 앞서 이들의 콘서트가 양질의 공연이 아닌 본질에서 벗어난 공연을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우스 콘서트란 연주자와 관객의 음악적 교감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서 함께 호흡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이윤을 목적으로 두거나 성격이 전혀 다른 하우스 콘서트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희 하우스 콘서트도 앞으로 관객들과의 소통을 통한 양질의 콘서트를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는 노력을 해나가야겠죠”라며 밝게 웃는 모습속에서 음악보다 앞서 관객과 연주자들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하우스 콘서트에 대한 믿음이 느껴졌다.
하우스 콘사트는 집이 주는 편안함과 흐트러짐을 부담 없이 즐기며 연주자와 같은 높이의 마룻바닥에 앉아 그들의 작은 땀방울, 작은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작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공연이었다. 취재를 간 그날 공연에서도 첼리스트 김영민의 첼로 활이 부러지는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는데, 관객들이 더 미안해하며 그 안타까움을 함께 하는 모습속에서 관객과 연주자와의 끈끈한 신뢰가 쌓인 모습을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첼로 활을 고치는 시간동안 하우스 콘서트의 주인장 박창수 대표는 조용히 와인을 나눠주며 관객들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시작하고 관객들은 와인을 마시며 또한 조용히 이어질 공연을 기다렸다. 테이프로 칭칭 감아 응급처치를 한 활을 들고 한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김영민의 모습에 관객들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진심어린 박수와 환호로 환영했다. 그렇게 다시 하우스 콘서트의 공연은 밤이 늦도록 계속됐다. 하나하나의 음표들이 모여 곡의 조화를 이뤄내듯 하우스 콘서트의 연주자와 관객들 그리고 그 옆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박창수 대표는 그렇게 조화롭게 하나의 콘서트를 완성해 갔다. 가슴이 떨리고, 심장이 멎을 듯한 벅찬 감동이 있는 공연을 보면서 앞으로도 이 아름다운 만남이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행복감에 젖어 돌아왔다.
House Concert
Editor 문지윤 photographer 조엘김 cooperation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
지난 11월, 에디터는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는 역삼동 Boda 스튜디오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이미 묵직한 첼로소리와 구슬픈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중국 전통악기 얼후의 떨림이 느껴졌다. 1978년산 뉴욕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그 곳엔 중국 전통악기 얼후의 연주가 지아펭팡(Jia Pen Pang), 일본 피아니스트 나오유키 온다(Naoyuki Onda), 한국 첼리스트 김영민의 조화로운 연주,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마음으로 연주하듯 한 끝의 움직임도 없이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고 있는 하우스 콘서트의 주인장 박창수 대표가 있었다.
말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 ‘하우스 콘서트’
여름이든 겨울이든 해가 뉘엿뉘엿 지고 마음에 여유가 찾아오는 매주 금요일 밤이면 연희동 또는 역삼동, 사당동, 도곡동 등 서울 어딘가에서 말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하우스 콘서트를 경험할 수 있다. 그곳에선 사람들이 마룻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와인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기대에 찬 듯 반짝반짝 빛을 내며 두리번거리는 눈빛은 과연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곧이어 연주자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모든 시간은 멈춘 듯 모두 하나의 세계로 몰입하기 시작한다. 관객과 연주자의 호흡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 나가는 세계, 하우스 콘서트의 세계로 말이다.
하우스 콘서트란 옛날 서양의 살롱 음악에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16~18세기 유럽 상류 사회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가를 집으로 불러 음악을 감상하며 사적인 모임을 가졌는데 그것이 살롱 음악으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2003년에 하우스 콘서트의 물결이 일어났는데, 유럽으로 음악 유학을 떠났던 유학생들의 귀환에 의해 국내에서도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한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는 2002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7년 동안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록커 강산에, 피아니스트 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행위예술가 무세중 선생 등 지금까지 500여명이 넘는 아티스트의 공연과 1만명이 넘는 관객이 하우스 콘서트를 다녀갔다. 하우스 콘서트를 기획한 박창수 대표는 하우스 콘서트의 매력에 대해 “좋은 연주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느끼며 함께 호흡할 수 있어 연주자와 관객의 멀었던 벽이 많이 무너질 수 있었던 점, 그리고 뒤풀이인 와인파티를 통해 연주자와 관객들이 소통할 수 있는 점이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하우스 콘서트가 자리매김을 하기까지에는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연희동 자택에서 처음 열게 된 공연은 주변 동네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연주자들을 섭외하는데 수차례 거절을 당하는 어려움 또한 수없이 겪었다. “처음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할 때 연주자를 섭외하는데 해마다 천만원 넘게 손해를 봤습니다. 아울러 이름난 연주가들의 셀 수 없는 출연거부보다 더 고민이었던 점은 진짜 음악을 사랑하는 관객들의 마음에 드는 연주자들을 섭외하는 거였죠” 라고 회상했다. 이런 어려움을 모두 참아내면서 하우스 콘서트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우선 양질의 음악 공연을 관객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주를 듣는 관객들의 행복과 연주를 하는 연주가들의 행복이 함께 소통되는 것에 대한 보람이 컷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며 웃는 그의 미소 속에서 하우스 콘서트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하우스 콘서트를 기획하고 모든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는 박창수.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6살 때 처음 작곡을 하고, 피아노 레슨을 단 한번 받은 후 독학으로 피아노를 마치고,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수석 입학을 한 그는 2003년 전주 영화제에서 국내 최초로 무성영화를 틀어놓고 즉흥 연주를 펼쳐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해마다 한두 차례씩 독일과 일본에서 연주 초청을 받고 지난해 프랑스 국영 라디오에서 그의 음악을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할 정도로 외국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처럼 해와음악계에서도 인정을 받는 그가 시작한 하우스 콘서트는 입소문을 타고 일파만파 퍼져나가 현재 이런 하우스 콘서트가 전국에 100여개 정도로 늘어났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기뻐하는 것보단 걱정이 조금 더 앞선다고 한다. “2002년 하우스 콘서트가 생긴 이래 전국에 100여개의 하우스 콘서트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뻐하기에 앞서 이들의 콘서트가 양질의 공연이 아닌 본질에서 벗어난 공연을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우스 콘서트란 연주자와 관객의 음악적 교감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서 함께 호흡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이윤을 목적으로 두거나 성격이 전혀 다른 하우스 콘서트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희 하우스 콘서트도 앞으로 관객들과의 소통을 통한 양질의 콘서트를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는 노력을 해나가야겠죠”라며 밝게 웃는 모습속에서 음악보다 앞서 관객과 연주자들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하우스 콘서트에 대한 믿음이 느껴졌다.
하우스 콘사트는 집이 주는 편안함과 흐트러짐을 부담 없이 즐기며 연주자와 같은 높이의 마룻바닥에 앉아 그들의 작은 땀방울, 작은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작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공연이었다. 취재를 간 그날 공연에서도 첼리스트 김영민의 첼로 활이 부러지는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는데, 관객들이 더 미안해하며 그 안타까움을 함께 하는 모습속에서 관객과 연주자와의 끈끈한 신뢰가 쌓인 모습을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첼로 활을 고치는 시간동안 하우스 콘서트의 주인장 박창수 대표는 조용히 와인을 나눠주며 관객들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시작하고 관객들은 와인을 마시며 또한 조용히 이어질 공연을 기다렸다. 테이프로 칭칭 감아 응급처치를 한 활을 들고 한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김영민의 모습에 관객들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진심어린 박수와 환호로 환영했다. 그렇게 다시 하우스 콘서트의 공연은 밤이 늦도록 계속됐다. 하나하나의 음표들이 모여 곡의 조화를 이뤄내듯 하우스 콘서트의 연주자와 관객들 그리고 그 옆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박창수 대표는 그렇게 조화롭게 하나의 콘서트를 완성해 갔다. 가슴이 떨리고, 심장이 멎을 듯한 벅찬 감동이 있는 공연을 보면서 앞으로도 이 아름다운 만남이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행복감에 젖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