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PLAYBILL] 2009년 11월 - 작은 공연의 미학, 손에 잡힐 듯한 소리
  • 등록일2009.11.08
  • 작성자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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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연의 미학, 손에 잡힐 듯한 소리
박창수의 ‘하우스콘서트’


음악의 참 맛은 큰 무대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음악가 박창수는 월드컵이 열리던 해 7월, 연희동 자택에서 ‘하우스콘서트(이하 ‘하콘’)란 이름으로 작은 음악회를 시작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가수 강산에, 영화감독 유현목, 국악인 이자람 등 다양한 장르 600명이 넘는 아티스트들이 ‘하콘’에서 관객과 만나는 동안 ‘하콘’은 독보적인 하우스콘서트로 자리를 잡았다. 공연 내내 바닥을 타고 몸 전체에 울려 퍼지는 소리와 혼신을 다하는 연주자들의 땀방울에 이곳에 빠져든 관객만 1만 2000여 명. 하지만 안정적인 ‘하콘’보다 진화하는 ‘하콘’을 꿈꾸는 박창수는 또 한 번 모험을 준비하고 있다.         Editor_김아형 photographer_김윤희

‘하콘’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하콘’의 매력은 연주자와 관객이 같은 높이,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할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에 있다. 처음 온 사람들은 ‘집에서 하는 공연인데 과연 소리가 좋을까’ 의심하지만 절대적으로 좋다. 대형 공연장은 악기 본연의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음향 반사각을 조절한 공간이다. 하지만 악기와 같은 재질인 마루에 앉아서 보는 ‘하콘’은 악기 본연의 소리가 마루를 타고 몸으로 찌릿찌릿 전달된다. 소리가 귀로 들리는데 그치지 않고 바닥의 진동을 통해 몸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관객들을 의자 대신 방석에 앉게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게 아니란 걸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가 없다.

연주자들의 수준을 보면 대형 공연장이 부럽지 않다.
“바로 코앞에 관객이 앉아 있는 ‘하콘’은 어떤 공연장보다 떨린다. 그럼에도 여기서 꼭 연주를 해보고 싶다.” 연주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하콘’을 본 후 연주자와의 연결을 부탁하는 기획자들이며, 스태프들과 찾아낸 재기 발랄한 신인 등 하우스콘서트의 의무인 아트마켓의 역할을 잊지 않는다. 간혹 ‘하콘’을 소수를 위한 ‘사교의 장’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예술이 실험되어지고 발전해가는 인큐베이팅 공간이다.

연주자 섭외와 프로그램 구성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초창기에는 섭외가 힘들어 애를 먹었다. 특히 ‘집’ 이라는 공간에 대한 연주자들의 선입견이 컸는데 지금은 오히려 연주자 쪽에서 연락이 온다. 덕분에 이미 2011년까지 큼직한 라인업은 꾸려진 상태다. 1회 때부터 연주자들에게 요구한 철칙은 ‘하콘’만을 위한 레퍼토리를 준비해 달라는 것. ‘하콘’을 리허설 격으로 여기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관객이 몇 명이든 그날 수입의 절반을 연주자에게 주는 것도 변함없다. 또 하나, 1회 때부터 녹음한 공연 실황 음반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 나온 음반은 47장이며 주문을 받으면 그때마다 CD제작부터 레이블 작업까지 수작업으로 진행한다.(CD는 1만 원이며 그 중 3천 원이 연주자에게 간다)

‘하콘’을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역시 금전적인 부분이 가장 어렵다. 관객들이 내는 회비 2만 원에서 반을 연주자 개런티로 주고, 남은 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다 보니 늘 모자라다. 초창기에는 매년 1,000만 원 씩 적자를 내다가 5년 째 되던 해에 처음으로 140만 원 흑자를 냈다. 연주자들의 이해와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어려운 점이 많다. 또 집에서 할 때는 매주 전혀 모르는 외부인들에게 집을 개방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뒷정리의 스트레스는 말도 마라.(웃음) 무엇보다도 ‘하콘’이 유명해지자 종종 오해를 받는데 가장 난감한 건 ‘돈 많이 벌었겠다’는 오해다.

그렇다면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하콘’이 아끼는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의 협연한 164회 공연 때 ‘하콘’ 사상 최다 관객을 기록했었다. 200명가량 관객이 몰려드는 바람에 1층에서 TV로 실황을 본 관객들도 수십 명이었다. 그날 이후, 관객이 많은 것도 좋지만 쾌적한 관람을 위해 100명이 넘을 것 같은 유명 연주자의 공연은 예약제를 도입했다. ‘하콘’을 하면서 몇 차례 메세나 후원 얘기가 오갔으나 공연문화를 투자나 마케팅 수단으로 보는 탓에 실제 후원으로 이어진 적은 없다. 그러던 중 지난해 스태프들의 활약으로 ‘하콘’이 예술전용공간으로 인정받아 문예진흥기금을 지원받게 되었다. 장비구입 예산이 필요했던 터라 감사했던 한편, ‘하콘’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뭉클했다.

200회를 기점으로 장소를 옮겨 ‘하콘’을 진행하고 있다. 그 까닭은?
1년에 30회 이상 열리는 ‘하콘’을 늘 같은 장소에서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았다. 또 2002년 ‘하콘’이 시작된 이후 전국 100여 곳에서 하우스콘서트가 생겼다. 하우스콘서트는 연주자와 관객의 가까이서 음악적 교감을 나누는 공간인 동시에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행해지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를 제대로 행하고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 고급화를 통한 이윤 추구나 자기 과시용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일관성 없는 레퍼토리를 내놓는 곳도 허다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하우스콘서트를 보여주고 ‘하콘’의 가치를 널리 퍼뜨려 보자는 심산으로 201회부터 ‘찾아가는 하콘’이 되어 여행 중이다. 아차산 인근의 스튜디오를 거쳐 지난 7월부터는 역삼동 ‘boda 스튜디오’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적절한 시기까지 공연을 하면 또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집을 대신할 공간을 구하는 게 당면한 과제다. 좋은 장소를 제공하겠다며 접근한 이들이 꽤 있었는데 대부분은 ‘하콘’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대접을 받으려 했다.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는 이가 제안하는 공간이라면 환영이다. 하지만 어떤 공간에 들어가든 ‘하콘’의 독립성이 최우선이다. 사람들이 “언제까지 할래?”라고 물으면 예전에는 “하우스콘서트가 많아지면 그만 두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제대로 된 하우스콘서트가 많아지면 그만 두겠다”고 한다. ‘하콘’을 시작한 후 내 연주 활동은 제약이 많다. 매주 ‘하콘’ 준비를 하다 보니 해외 공연은 엄두도 못 낸다. 가장 염려되는 건 박창수가 음악가보다 기획자로 인식되는 것이다. 내년에는 내 공연에도 힘을 실어보련다.(웃음)

“예술 공간은 또 다른 예술의 시작이며, 진정한 예술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집은 지붕부터 짓지 않는다” – 로베르토 그란디


하우스콘서트가 처음이시라고요? 이것만 알면 누구라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습니다. 첫째, 예매 걱정일랑 마세요. 하우스콘서트의 홈페이지에 공지된 공연 날짜와 시간에 맞춰 ‘그냥’ 가면 됩니다. (물론 가끔 거물급 연주자가 뜨는 공연에 한해 예약제로 운영되기도 합니다) 둘째, 선착순 입장이므로 먼저 가서 앉는 곳이 좌석입니다.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느끼고 싶다면 일찍 갈수록 명당을 차지할 확률이 높겠지요. 셋째, 관람 자세는 프리스타일입니다. 근엄한 클래식도 하우스콘서트에서 만큼은 힘을 뻽니다. 관객이 요청하면 즉석 연주는 물론 누워서 관람하라는 연주자도, 프로그램 사이사이 관객과 대화를 주고받는 연주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은 하우스콘서트 뿐입니다. 넷째, 뒷풀이는 절대 필수. 공연이 끝났다고 곧장 집에 가면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출연자와 관객이 한데 어우러져 술잔을 부딪히며 공연에 대한 감상을 격식 없이 나누는 그 시간이야 말로 하우스콘서트의 하이라이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