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음악신문사] 2009년 9월 9일 -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진 작은 무대 !!
  • 등록일2009.09.09
  • 작성자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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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진 작은 무대 !!
박창수의 THE House Concert를 찾아서

최근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우스 콘서트는 옛날 서양의 살롱음악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서양으로 건너가지 않아도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방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음은 물론이다. 이름이야 하우스 콘서트, 살롱음악회, 다양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호에서는 대표적인 하우스콘서트로 알려져 있는 THE House concert를 기획하고 있는 박창수씨를 만나 지난 2002년부터 현재까지 230여회의 작은 음악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눠봤다.  


처음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하우스콘서트>라는 이름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집에서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공연장이 아닌 “집”이 주는 편안함과 특별한 울림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중에 크면 우리 집을 공연장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라는 조금은 이상적인 꿈이었는데 결국은 현실이 되었지요. 2000년을 전후로 해서 대형 공연장에서 마구잡이로 열리는 공연들이 음악이 듣는 즐거움보다 보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에 집을 대대적으로 공사하면서 시작한 것이 2002년의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하는 실험음악을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도 있었구요.  

지금까지 하우스 콘서트를 열면서 힘들었던 점은?
처음엔 연주자도 관객도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먼저 연주를 하고 싶다고 얘기해주는 연주자들이 많은데 그들도 처음엔 거절을 많이 했었습니다. 또 이 하우스콘서트를 사업 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종종 있으신데, 이 음악회를 통해 금전적인 이득을 보는 건 거의 없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음악회의 취지를 잘 아는 연주자들의 이해와 함께 꾸려나가는 스태프들 덕분에 초창기에 겪었던 경제적인 부분이 최근에 조금 해결되긴 했지만 아직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생각해보니 가장 어려운 점은 이러한 전반적인 것들에 대한 오해가 아닐까 싶네요

어렸을 때 기억을 떠올리신다면?
저는 말을 늦게 한 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여덟살 때부터는 혼자 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웠고 결국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작곡과에 들어갔습니다. 집안 형편이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풍요롭진 않았지만 그 때문에 저의 음악적 개성을 살릴 수 있었다는 판단이 들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음악관은?
예술이라는 것은 습득이 아닌 체득이라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피아노 현 위에 물건을 올려놓거나 장치를 하면 전혀 새로운 소리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를 발견하고는 무척이나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사실 그 발상은 이미 존 케이지가 저보다 10여년 전에 발견한 것이었어요. 누가 먼저 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스스로가 직접 체득한 것이라 무엇보다 소중한 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그러한 체득이 나를 나타내는 창작으로 이어지는 것이구요. 무엇보다 이러한 창의적인 마음은 예술하는 사람의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또 그런 점에서 제가 지금 하는 하우스 콘서트 역시 저에게는 또 하나의 음악적 실험인 동시에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새로운 창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은 즐기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마지못해 강요나 억지로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고 또 단순히 대학을 가기 위한 목적이나 수단이라면 반드시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본인이 즐기고 노력하는 만큼 목표도 결과도 달라집니다.
  
앞으로의 하우스 콘서트의 계획은?
2002년 THE House Concert가 시작된 이후에 전국적으로 100여 곳 정도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우스콘서트가 가진 본질적인 면이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부각 되는 면이 있어서 마음이 조금 불편하기도 합니다. 하우스 콘서트란 연주자와 관객의 음악적 교감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함께 호흡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통해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시도가 이루어져야 하는 의무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 그래야지만 발전이 있구요. 그런데 늘 기존의 것만 반복하는 레파토리, 값비싼 티켓 등으로 하우스콘서트의 본질적인 면을 왜곡시키는 곳들이 많아진다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앞으로도 THE House Concert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면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통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천수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