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 ART HALL interVIEW] 2009년 1월호 - 일상의 공간에 비일상의 시간을 불어넣는 사람
  • 등록일2009.02.06
  • 작성자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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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공간에 비일상의 시간을 불어넣는 사람

프로듀서_박창수



글: 장진아 (LIG아트홀 음악기획PD.에디터) / 사진: 이윤식(사진작가)







“공연장의 개념을 다시 정의한 하우스 콘서트의 최대 미학은 관객과 연주자의 간극을 최소화해 소통을 극대화시켰다는 데 있다.

이웃집 사랑방을 찾듯 하우스콘서트에 걸음하는 이들은 오늘도 새로운 음악의 역사를 써 나가는‘파워풀한 마이너리티’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강은경







분명 그 곳은, 매일 스쳐 지나가는 골목 어귀에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주의깊게 들여다보지 않아 시간이 흘러도 그저 주변풍경 중 하나로만 잔상에 남는 그런 곳이었다. 어느 날, 마음이 적요하여 슬슬 걷던 중 뭔가 다른 그림이 갑자기 몸으로 느껴진다. 여느 때와 분명히 다를 바가 없는데, 무엇이 바뀐 것이지? 눈을 들어보니 잔잔히 켜진 램프 밑으로 낡은 팻말 하나가 그 일상적인 공간의 대문 앞에 살포시 얹혀 있다.

비일상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마법의 팻말.  H.O.U.S.E C.O.N.C.E.R.T



시각이 남들과 다르기만 하면‘기인’일 뿐이고, 거기에 의식이 깨이면‘천재’이며 그 천재가 시간의 세례를 받으면‘장인’이 되고, 거기에 예술에 대한 집요한 집념으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깨고 나올 때 드디어‘거장’이라는 당당한 호칭이 붙는다고 한다. 박창수라는 사람 앞에 붙일 수 있는 정확한 크레딧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아마, 세간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천재라는, 장인이라는, 거장이라는 이 모든 호칭을 포함할 수도,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하나 적확한 느낌이 있다면, 그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세상이 그려낸 경계를 넘은 예.술.가라는 것이다.



“광염소나타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 문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이 나랑 참 흡사해 보였다고 할까요?”



통금이 있던 중학교 시절, 자정에 선지를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보이는 대문마다에 발갛게 칠을 하고는 집 앞에서 불을 지핀 후, 대문들을 두드리고는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그. 들어간 서울대 음대에서 어느 날, 음대의 모든 유리창을 검은 천으로 싸버리고, 나중에 음대 옆 공터에서 그 천들을 모아 불을 피워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는 그. 그것도,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들이 대학내에 곳곳 포진되어 삼엄한 분위기를 지피우던 그 시대에. 단순히 싸이코라고 보기에는 뿜어져 나오는 그‘광기’가 무언가 답을 찾는 듯 집요해 보인다.



15세 때부터 시작한 행위예술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행위예술 분야에서 원로대접을 받고 있다는 그는, 6세때부터 작곡을 하고, 단 1개월 피아노 학원 교습 후 독학으로 피아노를 마스터하고, 서울대 음대에 수석 입학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든, 안정화된 구조보다 계속해서 바뀌고 실험하는 천성 덕분에, 어릴 때는  부모의 근심을, 학창시절에는 교수들의 걱정을 자아내었다,



실험음악, 행위예술, 프리뮤직의 영역을 대한민국에 확고하게 만들어놓은 음악가 박창수는 예술장르의 새로운 틀을 또 한 번 깨는 아주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2002년 7월, 연희동 자택에서 시작된 박창수의‘하우스콘서트’가 바로 그렇다. 16,17세기에 유럽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던‘살롱문화’의 핵심 정신을 21세기 대한민국 땅에 도입하고 싶었던 그는, 살롱문화가 가지고 있던 당시의‘실험의식’을 가장 중요한 화두로 꼽는다. 유럽예술의 근간을 이루었던 살롱이라는 공간이 표면적으로 뿜어내던‘화려함’이 아닌, 그 공간을 필두로 신진 예술가와 거장 예술가들의 작품의 원천이자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는 구심점으로서의 공간을 만들고자 함이다.



공연분야에서 초청받는 상황에 있는 대표 아티스트인 그가, 또한 까칠함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가 구태여 자신의 사적인 공간을 내놓고 무차별 대중들에게 공개하기까지 어떤 내면의 갈등이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공연장이라는 혹은 더 크게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체 기획구조에 제동을 걸고 싶었던 아티스트로서의 깨달음이 주효한 원인일 것 같다. 너무나 천편일률적으로 이루어지는 소위 상업적인 공연 시스템, 그리고 실험이 무시되고 예쁘게 포장만 된 채로 대중의 입맛에 한 방향으로 내보이며 더 이상 다른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하는 그런 관행들 말이다.



2009년에 이른 지금까지 7년에 이르는 시간속에서 한결같이 펼쳐지는 하우스 콘서트는 공연한 아티스트만도 500여 명에 이르며, 그 집을 다녀간 관객은 1만 명이 넘는다. 2층 거실에서 격주 금요일마다 펼쳐지는 공연 때문에 주변 연희동 사람들은 처음에는 많은 불만들을 소리 높였을 것이 분명하고, 아티스트 역시 연주하는 코앞까지 밀어닥쳐 앉은 관객들 때문에 상당한 심리적 위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힘에 의해서 각인되는 무언가의 힘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이라는 말이 있듯, 이제는 하나의 풍경으로 동네 주민들은 무언의 화해를 청해왔고, 처음에 어색해하던 아티스트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자 했다.



록커 강산에, 피아니스트 김선욱, 행위예술가 무세중 선생, 영화감독 유현목 선생 등 예술 전 장르에 걸친 나이를 불문한 선후배 아티스트들이 하우스 콘서트 무대에서 관객들과 호흡을 했고, 최소 60명에서 최대 180명이라는 매회 관객들은 마룻바닥에서 울리는 공간의 진동으로 소리를 보고, 듣고, 느꼈다. 20,000원이라는 공연료와 회당 들어온 관객들의 수를 곱해서 나오는 한 회당 공연수익은 절반은 아티스트 비용으로 절반은 리셉션 및 홍보비로 자투리 없이 정산된다. 매년 적자만 기록하다 얼마전 최초 흑자 16만원을 내어서 기뻐하는 스텝들의 상황을 전해 듣는다면, 행복하다고 해야하는 것인지 안타깝다고 해야하는 것인지 누군가들은 황당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하우스 콘서트만이 갖고 있는 힘이고, 그 힘에 입어 예술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가장 작지만 확실한 실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8년 말 경, 200회를 맞은 하우스 콘서트를 기념하며 지난 시간의 기록들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책이 발간되었다.‘하우스 콘서트, 그 문을 열면(음악세계)’이다. 하우스 콘서트 셋업에서 현재까지의 소소한 에피소드들, 예술에 대한 그리고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은 책을 통해,‘예술’이라는 명제를 일상에서 어떤식으로 실험하고 녹여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철학이 곳곳에 베어 있다. 또한, 인디음악 씬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음반 가내수공업이 하우스 콘서트 스텝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매회 펼쳐진 공연들을 구비된 자체 음향 시스템에서 직접 녹음하고 다듬어 일일이 손으로 포장한 음반이 주문자들에게 전해진다.



하우스 콘서트라는 단어가 내뿜는‘세련되고 상류지향적이며 초대받은 자만 들어갈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하나의‘실험의 장’으로서 집이라는 일상 공간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낸 사람, 박창수.

그가 이 공간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은 단지 예술분야의 실험만이 아니다. 그 곳을 통해 또 다른 관객들, 또 다른 아티스트를, 또 다른 스텝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또 다른 무형의 더 큰 공연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매해 2%씩만 성장하면 어떨까요. 목표를 너무 크게 잡아서, 욕심이 지나쳐 빠르게 성장하는 프로듀서들은 많습니다만, 꾸준히 지속적으로 끝까지 가는 프로듀서들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예술이라는 길고도 먼 시간 여정에서 매해, 시간을 들여 조금씩만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절제할 수 있는 것, 그 얘기를 후배들에게 하고 싶군요.”







박창수/ 프로듀서, 작곡가, 피아니스트. 2000년 이후 세계 여러곳에서 프리뮤직 활동과 함께 다원예술의 신경향을 선보이는 총체적인 무대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 뮤지카 아타락시아, Voice of Asia, 2008 서울 Free Music Festival 음악감독을 역임했고, 현재 7년째‘하우스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하우스 콘서트, 그 문을 열면(음악세계,2008)’ 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