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경향] 2008년 10월 28일 - 앞으론 찾아가는 하콘을 열 계획
- 등록일2008.10.23
- 작성자박창수
- 조회2452
문화인/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박 창 수
“앞으론 찾아가는 하콘을 열 계획”
한 아이가 있다. 6살때 작곡을 했고(“어떻게 6살 짜리가 작곡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누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고 그냥” 이라는 재미 없는 대답을 했다), 그 모습을 본 부모는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하지만 1개월 만에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연습하기 시작했다. 뛰어난 음악적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아이와 너무 달랐다. 최초의 사건은 중학교 2학년때 벌인 ‘퍼포먼스’다. 통금이 있던 시절, 자정에 이웃집 대문에 선지를 바르고 대문 앞에 불을 피워 의식을 치른 후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린 것. 부모마저 ‘이런 애가 한국에 있으면 죽도 밥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입양까지 알아봤을 정도.
학창시절 ‘문제아’였지만 뛰어난 작곡과 피아노 실력 때문에 레슨 한번 받지 않고 서울대 음대에 수석 합격 했다. 서울대 음대를 다닐 때도 친구와 교수를 놀라게 하는 퍼포먼스는 그치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 흔히 ‘천재’라는 사연으로 온갖 매체에 인터뷰 기사가 나갔던 박창수씨의 실제 사연이다. 그는 현재 피아니스트, 작곡가, 프리뮤직을 하는 연주자이자 공연 중 피아노를 부셔버리는 등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보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연주자 겸 작곡가다.
그는 마치 독불장군처럼 연주나 작곡 분야에서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한국의 예술계에서 그의 독특한 행보는 인정받기 힘들었고, 비판과 시기 어린 목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걸음을 조금씩 늦추게 만든 것은 2002년부터 시작한 하우스 콘서트(사람들은 ‘하콘’이라고 줄여 부른다) 덕분이다. 그의 사연이 다시 매체에 오르내리게 된 것도 하콘 때문이다.
하콘은 단어 그대로 연주자와 같은 높이의 마룻바닥에 앉아서 연주자들의 땀방울과 숨소리까지 보고 들을 수 있는 집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이다. 2002년 7월 2주에 한 번씩(시리즈 공연은 매주 한 번씩) 열린 것이 10월 중순 현재 202회를 넘어섰다. 200회 기념으로 얼마 전 ‘하우스콘서트, 그 문을 열면…’(음악세계) 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는 하콘의 역사와 박창수씨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져 있다. 특히 연주자로부터 “난 그런 곳에서 연주를 할 수 없다”거나 “그 개런티를 받고 나보고 연주를 하라는 말이냐”등의 이야기를 들은 사연도 들어있다(연주자 개런티는 관객이 낸 입장료 수익의 50%로 정해져 있다). 지금은 스타 피아니스트가 된 김선욱과 인연도 볼 수 있어 반갑기만 하다.
이제는 연주자 사이에서 “하콘에서 연주를 해야 연주자로 인정받는다”는 이야기가 돌고, 2010년 초반까지 하콘의 스케줄이 다 짜여져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엔 거절했던 이가 “연주를 하고 싶다”는 연락도 많이 해오지만 거절하기 바쁘다. “처음 겪었던 설움을 이제 어느 정도 갚고 있는 셈”이라며 웃을 수 있게된 셈.
누구도 하콘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도권 안에서 개혁하려면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열심히 했다”는 말대로 박창수씨는 운영비 때문에 마이너스가 된 통장과 하콘에 쏟아부은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하콘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박창수씨는 하콘 200회를 기점으로 “앞으로는 찾아가는 하콘을 열 계획이다”고 밝혔다. 하콘을 열고 싶은 이들에게 자신과 스테프들이 찾아가 도움을 주는 것. 그리고 얼마전에는 연희동에 있던 하콘을 아차산역 부근으로 옮겼다. 박창수씨는 11월 7일 그곳에서 연주회를 열 예정이고, 11월 20일과 21일에는 프랑스에서 연주회가 계획되어 있다.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고 싶어서 남 눈치 보지 않고 달려온 박창수씨. 하콘을 통해서 연주자.작곡자.퍼포머 박창수의 진면목이 널리 알려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앞으론 찾아가는 하콘을 열 계획”
한 아이가 있다. 6살때 작곡을 했고(“어떻게 6살 짜리가 작곡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누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고 그냥” 이라는 재미 없는 대답을 했다), 그 모습을 본 부모는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하지만 1개월 만에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연습하기 시작했다. 뛰어난 음악적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아이와 너무 달랐다. 최초의 사건은 중학교 2학년때 벌인 ‘퍼포먼스’다. 통금이 있던 시절, 자정에 이웃집 대문에 선지를 바르고 대문 앞에 불을 피워 의식을 치른 후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린 것. 부모마저 ‘이런 애가 한국에 있으면 죽도 밥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입양까지 알아봤을 정도.
학창시절 ‘문제아’였지만 뛰어난 작곡과 피아노 실력 때문에 레슨 한번 받지 않고 서울대 음대에 수석 합격 했다. 서울대 음대를 다닐 때도 친구와 교수를 놀라게 하는 퍼포먼스는 그치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 흔히 ‘천재’라는 사연으로 온갖 매체에 인터뷰 기사가 나갔던 박창수씨의 실제 사연이다. 그는 현재 피아니스트, 작곡가, 프리뮤직을 하는 연주자이자 공연 중 피아노를 부셔버리는 등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보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연주자 겸 작곡가다.
그는 마치 독불장군처럼 연주나 작곡 분야에서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한국의 예술계에서 그의 독특한 행보는 인정받기 힘들었고, 비판과 시기 어린 목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걸음을 조금씩 늦추게 만든 것은 2002년부터 시작한 하우스 콘서트(사람들은 ‘하콘’이라고 줄여 부른다) 덕분이다. 그의 사연이 다시 매체에 오르내리게 된 것도 하콘 때문이다.
하콘은 단어 그대로 연주자와 같은 높이의 마룻바닥에 앉아서 연주자들의 땀방울과 숨소리까지 보고 들을 수 있는 집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이다. 2002년 7월 2주에 한 번씩(시리즈 공연은 매주 한 번씩) 열린 것이 10월 중순 현재 202회를 넘어섰다. 200회 기념으로 얼마 전 ‘하우스콘서트, 그 문을 열면…’(음악세계) 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는 하콘의 역사와 박창수씨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져 있다. 특히 연주자로부터 “난 그런 곳에서 연주를 할 수 없다”거나 “그 개런티를 받고 나보고 연주를 하라는 말이냐”등의 이야기를 들은 사연도 들어있다(연주자 개런티는 관객이 낸 입장료 수익의 50%로 정해져 있다). 지금은 스타 피아니스트가 된 김선욱과 인연도 볼 수 있어 반갑기만 하다.
이제는 연주자 사이에서 “하콘에서 연주를 해야 연주자로 인정받는다”는 이야기가 돌고, 2010년 초반까지 하콘의 스케줄이 다 짜여져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엔 거절했던 이가 “연주를 하고 싶다”는 연락도 많이 해오지만 거절하기 바쁘다. “처음 겪었던 설움을 이제 어느 정도 갚고 있는 셈”이라며 웃을 수 있게된 셈.
누구도 하콘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도권 안에서 개혁하려면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열심히 했다”는 말대로 박창수씨는 운영비 때문에 마이너스가 된 통장과 하콘에 쏟아부은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하콘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박창수씨는 하콘 200회를 기점으로 “앞으로는 찾아가는 하콘을 열 계획이다”고 밝혔다. 하콘을 열고 싶은 이들에게 자신과 스테프들이 찾아가 도움을 주는 것. 그리고 얼마전에는 연희동에 있던 하콘을 아차산역 부근으로 옮겼다. 박창수씨는 11월 7일 그곳에서 연주회를 열 예정이고, 11월 20일과 21일에는 프랑스에서 연주회가 계획되어 있다.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고 싶어서 남 눈치 보지 않고 달려온 박창수씨. 하콘을 통해서 연주자.작곡자.퍼포머 박창수의 진면목이 널리 알려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