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김선욱 듀오 연주회 후기
  • 등록일2007.09.22
  • 작성자맹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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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19일 군에서 휴가를 나오자마자 달려간 곳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었다. 그 날 콘서트홀에서는 45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공연, 빈 슈타츠오퍼의 첫번째 내한공연이 있었다. (제일 싼 합창석에서 보긴 했지만......)



그들의 "피가로의 결혼" 을 보면서 느낀 점은, 어쩌면 저렇게 빈틈없으면서도 열정이 느껴질까 하는 것이었다. 수 회의 공연으로 단련된 솔리스트들과 빈 필의 단원들이 몸통이 되는 슈타츠오퍼의 단원들, 그리고 날카로우면서도 이지적인 지휘를 선보였던 세이지 오자와...

45만원이라는 가격은 좀 너무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나에게 준 감동은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직도 수잔나와 백작부인의 "편지의 이중창" 이 귀에 아른거리니 말이다.



그리고 9월 21일, 신촌에 위치한 작곡가 박창수씨의 집에서 하우스 콘서트가 있었다. 연주자는 그 소녀팬들이 떼로 몰려다닌다는 김선욱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우리나라 음악계를 이끌어 갈 차세대 신예들의 무대였다.

(몇달 전, 우연히 김선욱이 나오는 연주회 표를 예매하려는데 빈 자리가 정말 하나도 없는 기현상을 발견했다....보통 외진 자리라도 한두개는 남는법인데....레퍼토리가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팬들의 힘이라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자리가 없을 것 같아 한시간 1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겨우 중간 자리를 불편하게 앉아서 볼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불편한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가정집에서는 어떤 음향이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다.



8시 5분전, 연주자들이 관객 속을 뚫으며 등장하고 첫번째 곡인 타르티니 "악마의 트릴" 이 시작되었다.

극악한 테크닉을 요하는 곡이었지만, 권혁주는 수월하게 어려운 패시지들을 풀어 나갔다. 다만 실수가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음색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순간순간 들리는 울프음과 거친 보잉으로 인한 마찰음이 약간 거슬리기도 했다.

창문을 닫아 놓았는데 사람은 많으니 안은 거의 용광로로 변해갔다. 연주자들도 땀으로 샤워를 하고 나서야 첫번째 곡이 끝이 났다.



두번째 곡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이었다. 5번 봄과 9번 크로이처 말고 2번은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지만, 분위기가 그다지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베토벤의 초기 소나타인 만큼 이 곡에서는 피아노의 역할이 상당히 비중 있게 나타난다. 김선욱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20세 청년이 연주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능숙한 완급조절......그의 인기가 단순히 "미소년 피아니스트" 이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연주였다.

권혁주도 첫 곡 보다는 조금 안정된 음색으로 베토벤을 연주했다.

곡 자체의 분위기는 9번 "크로이처" 와 상당히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터미션 후, 세번째 곡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시작되었다. 권혁주는 전반부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이 곡에서 자신의 음색을 유감없이 뽐내 보였다.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매끄러워진 음색에, 순간순간 어려운 패시지를 명쾌하게 처리하는 테크닉, 클라이막스에서의 폭발력 모두 대단했다.능히 호연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연주였다.

처음 들어보았으나, 상당히 낭만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곡이었다. 김선욱 역시 전반부와 마찬가지로 능숙하게 바이올린과 호흡을 맞추었다. 특히 피아니시모에서의 꺼질듯 흔들리는 촛불을 연상시키는 음색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곡이 끝나자, 더위 속에서도 아무 말 않고 연주에 빠져들었던 관객들의 탄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앵콜을 한 곡 하고, 모두들 밖으로 나가서 한숨 돌리는 동안,약속이 있었던 나는 아쉬움을 남기고 곧바로 집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젊은 연주자들의 무대치고는 상당히 완성도 높은 연주였으나, 자신들의 개성이 덜 묻어나오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런 것은 역시 세월만이 만들어줄 수 있는 것 같다. 음향은 가정집치고는 좋았으나, 그랜드 피아노의 저음에서의 강력한 타건을 감당하기에는 집이 좀 좁아 보였다. 소리가 너무 반사가 심해서 뭉개지는 모습을 보였다.역시 콘서트홀의 2.0초라는 사기성 짙은 잔향을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나 보다.



3일만에 전혀 성격이 다른 두 공연을 관람했다. 평균 가격 21만원에 이르는 비싼 공연과 2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는 공연,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과 가정집, 좌석과 바닥에 앉아서 보는 공연, 세계 정상급의 베테랑들과 아직 그 기량을 키워가고 있는 신예, 클래식의 모든 아름다움을 종합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오페라와 가장 간단한 구성으로 음악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소나타. 공통점을 찾기 힘들었지만 그들의 음악이 모두 감동을 주었다는 점은 다를 바가 없었다.



콘서트홀의 연주뿐만이 아니라, 이런 곳에서의 연주도 가끔씩은 볼만한 것 같다. 앞으로 이 하우스 콘서트 사이트를 자주 들러서 확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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