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음악이 있었다.
  • 등록일2007.09.09
  • 작성자강선애
  • 조회6976
학생 시절, 곡을 쓴다는 개념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내게
오선지에 곡을 쓰고 매주에 한번 레슨을 받는 시간은  나이트메어 와도 같은 시간들 이었다.

“이 조성을 선택한 이유는?”
“중심음이 F음인 이유는?”
“이 화성이 쓰인 이유는?”
“제목을 이렇게 정한 이유는?”

모든 것들이 어째서, 왜로 시작하는 질문들이
정말 별다른 이유 없이 습관처럼 그것을 선택한 내게
‘어째서 저런 질문에 답을 해야만 하는 걸까’로 귀결되었기 때문에
아마 더욱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써 내려간 오선지의 콩나물 대가리에는
연습 되어진 기교만 있을 뿐, ‘선애, 너’ 는 없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그렇게 약 1년 반을 무심히 흘려 보냈다.



2007년 9월 7일, 금요일의 하우스 콘서트에서 임미정 선생님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4년 전 그 시간들을 떠올렸다.
형체만 있을 뿐 의미가 없다는 말을, 기교만 있을 뿐 음악이 없다는 말을
음악 속에 너 자신의 특성이 없다는 말을,
Generous 한 건 의미가 없다, unique 해야 그것이 음악이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리던 그때가 떠올라
손에 잡고 있던 촬영장비에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임미정 선생님의 연주는 그만큼 독특했다.
‘My old music box’ 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던 선생님의 옛 추억이 담긴 곡들의 연주는 그래서 더 특별했다.
정확한 베이스의 울림에 뒷받침 되어 흐르는 멜로디는 때로는 정확하게 때로는 서정적으로 선생님의 독특한 해석을 표현해냈고 난 그제서야 형체와 의미가 결합된 진짜 ‘음악’ 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nightmare와도 같은 시간이 있었다 한들,
앵콜곡으로 연주된 그리그의 아침이나 북한 작곡가의 아리랑까지…
그 의미 있는 해석만큼이나 내게는 의미 있는 밤이었다.



_여담 :  임미정 선생님의 연주를 가장 처음 들었던 때는
           대학교 2학년 때, 초창기 하콘 때 녹음된 음반을 통해서이다.
           당시 들었던 곡은, 박창수 선생님께서 고등학교 재학 당시 작곡하셨다던
           “개 자식의 꿈” 이라는 피아노 솔로 곡.
           악보를 들고 쫓아가, ‘선생님 이 곡 또 쳐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사실 꾹 참았다. 이번에 꾹 참았기 때문에,
           다음에 언제 또 뵈면 무턱대고 ‘쳐주세요.’ 라며 조를지도 모르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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