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대학 초년생인줄 알았었다.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던 275회 하콘의 리허설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를 진작에 알아봤어야 했다. 고 3 학생이고 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그를 보면서, 고 3 학생이 일찍부터 쉽지않은 값진 경험을 한다고 감탄했었다. 앞으로 뭘 하겠냐는 나의 질문에 이 친구는 음악 이론 쪽으로도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280회 주인공 양희윤이었다.
280회 1부 2부의 프로그램 짜임이 이랬다 :
원래는 솔로곡 - 익숙하고 안정적인 흐름의 2인 이상을 위한 곡 - 조금은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2인 이상을 위한 곡.
실제는 솔로곡 - 듀오곡 - 5인 이상의 앙상블곡.
자연스러움. 흔히 클래식이라 불려지는 곡들은 아무리 새롭고 낯선 곡이라도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적다. 어느정도 집중해서 그 흐름을 보고 듣게 되면 누구나 설명은 힘들어도 흐름이 막히거나 끊기면 느낌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잡게 된다.
양희윤의 곡의 힘은 자연스러움이란 생각. 절대로 익숙하고 뻔한 길만 택한 것이 아닌데도 그 길이 거의 항상 길다워보이고 가끔 명쾌한 이정표를 찾게 되고 새로운 탄력을 길위에서 받게 된다.
자연의 구조는 카오스조차 질서로 간추린 프랙탈 구조와 겹친다. 카오스가 반복되고 복제되고 변형된다. 그리고 그 핵심 원리가 보존과 기억이다.
양희윤은 떫고 달콤한 맛을 기억했다. 기억을 같이 나눈 할아버지가 그리웠다. 할아버지의 기억을 품고 있다가 그 추억을 떠올렸고 그 무게를 첼로줄 위에 얹었다. 일단 그렇게 풀어진 기억은 양희윤의 맛에 대한 사연과 소망을 이야기하면서 하콘이라는 또다른 기억을 만들고있었다.
기억의 고통. 자라보고 놀란 기억은 솥뚜껑을 보면서 유사한 새로운 사건 속에서 다시 고통받는다. 기억을 짜내는 고통. 기억과 그걸 풀어내는 방법이 복잡한 이유는 그 기억을 명확하게 풀었을 때 돌아올 오해와 아픔과 비난을 피하여 살아남기 위해서다. 우회로를 통해야 생명이 유지된다. 글짓기와 소리짓기도 이런 기억의 우회로에 다름 아니다.
기성 연주자들 20인이 막 성장하는 어린 작곡가 1인의 곡을 연주했다는 이례적인 역사가 이루어졌다. 연주자들의 넓은 포용력에 큰 박수를 보내고. 한편 새로운 작품을 자기화시키는 시간이 적은 것은 이해하겠지만, 음악을 듣는 흐름에 방해를 줄 만큼 음정이 흔들리거나 성의 없이 훑고 지나치거나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여러모로 다양한 경험 면에서 좋겠지만 양적 경험이 항상 음악적 깊이를 담보하진 않을 것이다.
"심야식당"이 아니라 하콘에서 그가 주문한 것은 떫지만 달콤한 생율이었다. 생율을 깎아주셨던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은 그는 하콘에서 어린 시절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첼로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음성이 되었다.
이날 연주를 듣고 와인을 나누었던 사람들은 언젠가 한 손에 들릴 달콤 쌉싸름한 와인잔에서 젊고 당차고 수줍은 어린 작곡가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280회 1부 2부의 프로그램 짜임이 이랬다 :
원래는 솔로곡 - 익숙하고 안정적인 흐름의 2인 이상을 위한 곡 - 조금은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2인 이상을 위한 곡.
실제는 솔로곡 - 듀오곡 - 5인 이상의 앙상블곡.
자연스러움. 흔히 클래식이라 불려지는 곡들은 아무리 새롭고 낯선 곡이라도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적다. 어느정도 집중해서 그 흐름을 보고 듣게 되면 누구나 설명은 힘들어도 흐름이 막히거나 끊기면 느낌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잡게 된다.
양희윤의 곡의 힘은 자연스러움이란 생각. 절대로 익숙하고 뻔한 길만 택한 것이 아닌데도 그 길이 거의 항상 길다워보이고 가끔 명쾌한 이정표를 찾게 되고 새로운 탄력을 길위에서 받게 된다.
자연의 구조는 카오스조차 질서로 간추린 프랙탈 구조와 겹친다. 카오스가 반복되고 복제되고 변형된다. 그리고 그 핵심 원리가 보존과 기억이다.
양희윤은 떫고 달콤한 맛을 기억했다. 기억을 같이 나눈 할아버지가 그리웠다. 할아버지의 기억을 품고 있다가 그 추억을 떠올렸고 그 무게를 첼로줄 위에 얹었다. 일단 그렇게 풀어진 기억은 양희윤의 맛에 대한 사연과 소망을 이야기하면서 하콘이라는 또다른 기억을 만들고있었다.
기억의 고통. 자라보고 놀란 기억은 솥뚜껑을 보면서 유사한 새로운 사건 속에서 다시 고통받는다. 기억을 짜내는 고통. 기억과 그걸 풀어내는 방법이 복잡한 이유는 그 기억을 명확하게 풀었을 때 돌아올 오해와 아픔과 비난을 피하여 살아남기 위해서다. 우회로를 통해야 생명이 유지된다. 글짓기와 소리짓기도 이런 기억의 우회로에 다름 아니다.
기성 연주자들 20인이 막 성장하는 어린 작곡가 1인의 곡을 연주했다는 이례적인 역사가 이루어졌다. 연주자들의 넓은 포용력에 큰 박수를 보내고. 한편 새로운 작품을 자기화시키는 시간이 적은 것은 이해하겠지만, 음악을 듣는 흐름에 방해를 줄 만큼 음정이 흔들리거나 성의 없이 훑고 지나치거나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여러모로 다양한 경험 면에서 좋겠지만 양적 경험이 항상 음악적 깊이를 담보하진 않을 것이다.
"심야식당"이 아니라 하콘에서 그가 주문한 것은 떫지만 달콤한 생율이었다. 생율을 깎아주셨던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은 그는 하콘에서 어린 시절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첼로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음성이 되었다.
이날 연주를 듣고 와인을 나누었던 사람들은 언젠가 한 손에 들릴 달콤 쌉싸름한 와인잔에서 젊고 당차고 수줍은 어린 작곡가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