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람기니까, 관람의 처음부터 끝까지 쓰게 될 거 같아요.
한 곡 한 곡 들었을 때의 느낌도...기억에 오래 오래 남도록 써보고 싶은 맘에
아주 긴 글이 될 수도 있겠다 싶네요...
빛의 하루,
빛의 하루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조금 서둘러야 했습니다.
집도, 회사도 인천인지라 아차산까지는 꽤나 머니까요,
아차하고 칼퇴근을 못할 경우엔, 하루 중 아침나절은 못보고 지나갔을 테니까요,
두근대는 마음으로 어떤 공연일지 상상하며 도착한 아차산역 5번 출구
정말 얼마 걷지도 않아 미도참치 건물을 보게 되었어요.
나무로 만들어진 하우스콘서트 간판(?)
지하로 내려가려는데 바로 앞에 내려가는 분들...
나이가...엄마, 아빠 연배의 어른들이었어요. 순간 깜짝 놀랐다는
이제까지 제가 갔던 거의 대부분의 공연에서
엄마, 아빠와 비슷한 나이의 분들을 뵌 적이 없었거든요.
진짜 어른들도 (가짜 어른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올 수 있는 공연이구나.
클래식뮤테이션의 내부로 들어와, 수북한 신발 한켠에 신발을 벗어두고
바닥에 작은 방석을 깔고 앉았어요.
정말 집 같구나. 싶은 기분이 들었죠.
천장은 꼭 와플 같았구요...(저녁을 못 먹고 지하철에서 와플 사먹어서 그런 생각 든걸까요?)
그리 큰 공간이 아니어서 뒷자리에 기대고 앉은 분들도 공연을 보는데는 무리 없을 것 같았구요
나중에 뒤쪽 자리가 좁을 것 같다는 이야기에 일사분란하게
앞으로 쭉쭉 조여 앉을 때, 왠지 한마음 같아 기분이 좋더랍니다.
박창수님이 먼저 나오셔서 하우스 콘서트를 더 잘 즐기는 노하우 몇가지
얘기해주셨죠. 에어컨이 고장 나서 안 될뻔 했다는 얘기도 해주시고...
그 느릿느릿한 말투와 모습이, 처음뵙는데도 왠지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하우스 콘서트가 처음이었어서
진짜 공연 보기 전에도 보이는 하나 하나,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 다 신기했었구요...
이제부터 진짜 공연 얘기
조명이 어둑어둑하게 꺼진 상태에서 그가 등장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꽤 많은 공연을 갔었지만
싸인 받을 때 빼고, 이렇게 가까운데서 보는 건 정말 처음이었죠.
맨 앞자리였다면 심장이 멎었을 꺼 같아요.
빛의 하루, 그의 노래를 아침부터 밤까지 어울리게끔 순서를 정해서 들려주는 공연이었는데
조명을 담당해주시는 분의 센스가 정말이지 멋졌다죠.
잠에서 깨는 새벽녁.
태국 치앙마이(?)에서 녹음해왔다는 고요한 고산지대의 아침소리가 들리고 나서
쿠바의 말레콘 바닷가에서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소리에 맞춰
기타를 뚜두둥.
눈을 감고, 파도소리를 들으니까
꼭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고 있는 기분도 들었어요.
어느 곳에 가서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풍경을 보고, 경험을 할 때
그 때의 기분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참 복받은 일인 것 같다는 생각, 부러움을 느꼈어요.
또, 먼 곳에 가서 떠오르는 가까운 이들에게
노래로 맘을 전할 수 있는 것도.
기껏해야 사진, 엽서에 몇마디 글귀 적는 것밖에 못했던 저는
세비야를 들을 때마다, 그 엽서에 다 적지 못했던 말들과 감정이 떠오르거든요.
아침이 밝아오네요.
얼마전, 우연히 카페에서 채팅을 했을 때...
"수연씨도 굿모닝요"라는 말을 한철님이 해주셨는데...
굿모닝, 인사를 나누고
강아지와의 산책, 치카치카 양치질, 출근 길의 그녀를 만났어요.
어쩜 이렇게 절묘한 선곡이 되었는지...
이한철님의 탁월한 연기력과 더불어
한편의 연극같은 느낌까지 (ㅎㅎㅎ 콩깍지 인가요?)
카메라나 녹음기처럼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물건들은 참 고마운 것 같아요.
기억과 경험을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네요.
하우스콘서트가 펼쳐지는 거실이 갑자기 화장실이 되기도 하고, 산책로와 전철역까지...^^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려도
찌는 듯한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도(환하게 켜진 조명 아래에서도)
즐거울 수 있었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노래 가사가 이끄는 대로
앉아서 춤을 추다가도 가끔 숨이 차오르기도 하고
방바닥에 앉아서도 "난 날아 오를 거야" 환호하고
뉘엿뉘엿 해가 저무네요.
찬밥처럼 방안에 담겨, 엄마를 기다리는 소년의 마음을 얘기하면서
기형도 시인의 시 엄마생각에 곡을 붙여 불러주셨죠.
그리고 나서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는 저녁, 일이 자꾸 밀리고 쌓일 때
"내가 아마추어라서 그런가?" 자꾸만 자신감이 사라지고,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
들으며 위로받던 그 노래. 동경의 밤이 흐르는 순간엔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때론 밝고 신나게 위로해주고 또 때론 맘을 차분하게 해주는 곡과 쉬우면서도 공감가는 가사가...
한철님 음악을 오래 좋아하게 하는 이유인 것도 같아요.
퇴근을 하면서, 시내버스 안에서...펼쳐지는 한순간 꿈결같은 로맨스
환상이 지나고
옆에 있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애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모두를 안아주는 시간. ^^*
이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이 서로 안아주지 않으면 왠지 속상했었는데...
저는 항상 같이 앉아주는 언니가 있어서 ㅎㅎ
오늘의 안아주는 시간엔, 뒤쪽 벽에 기대어 공연을 보시던 어머님, 아버님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부끄러워 하시다가, 용기를 내어, 서로의 왼쪽 가슴에서 전해지는 따스함 많이 느끼셨길...
화끈하고 후끈한 시간이 지나고,
구운몽처럼, 이 긴 시간이 모두 꿈속에서 본 한철인 듯...
현석과 동훈과 영광은 잠이 들고
한철님 혼자 연주하셨더랬죠.
고생 많으셨어요.
멋있었어요.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되는 본 공연에 맞먹는 앵콜공연...
모두의 앵콜곡을 해주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그 중 몇 곡은 할 수 없었구요...
금요일 송이라고 말해준 우린 하늘을 날았다.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즐겼던 하우스 콘서트를 뒤로 하고
이제는 집에 가야 할 시간...임을
얼마나 아쉬워 했었는지요...
Leaving City Havana를 마지막으로...
공연이 끝났어요.
얼음 와인과
약간의 크래커와 치즈를 먹고...
급히 먼저 떠나면서
내내 뒤돌아 보게 되었어요.
이한철님의 공연이 너무 좋았고
하콘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다음에...기회가 된다면
또 보고 싶어요. ^^ (하콘의 다른 공연도, 이한철님의 다른 공연도, 이한철님이 나오는 하콘도)
순간의 기억으로 한참을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