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희동에서의 하우스 콘서트 이후로, 그 분위기가 그대로일까 약간은 걱정을 하며 찾아갔던 클래식 뮤테이션에서의 하우스 콘서트는 하우스 콘서트 그대로였습니다.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 나가던 사람들과 음악과 와인이 그대로이고, 무엇보다 정겨운 마룻바닥이 있었으니까요. 작년의 갈라 콘서트가 매우 좋았다는 이야기를 지인에게 들어 많이 기대했던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남자친구의 생일 선물로 선물하고자 했어요. 남자친구는 클래식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 2008년 두어번의 하우스 콘서트를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된 케이스입니다. 그리고 아주 좋은 크리스마스 겸 생일 선물이 되게 해 준 하우스 콘서트에 감사드립니다.
앳된 얼굴과 발그스레한 볼이 인상적이었던 클라리넷의 김한 군의 깜찍한 퍼포먼스는 어찌나 귀여웠는지 모릅니다. 나는 저 나이 때 뭐 하고 살았나를 돌아보며 조금 괴로워하기도 했지요. 강은일 님의 해금 연주는 따로이 독주회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연주회에서도 해금으로 구현할 수 있는 음악의 지평을 끊임없이 넓혀가는 그 열정에 감동 받았는데, 박창수님과의 Free Music에서 보여준 독특한 조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두 분의 팽팽한 에너지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각자의 악기로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함께 겨루듯 조화되듯 어우러지는 음색이, 그 내공이 압도적이었달까요. 시각적으로도 참 즐거웠던 공연입니다. 깊은 음색의 울림이 마룻바닥을 통해 너무나 잘 느껴져서 좋았던 장성찬, 한선미님의 소나타와 이어진 나M밴드. 매력적인 목소리로 부르는 Padam Padam을 들으며 영화 라비앙로즈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두 미녀 뮤지션의 흔히 볼 수 없는 마림바와 플룻 듀오도 인상 깊었구요, You raise me up이 참으로 따뜻하고 몽환적으로 들리는 연주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휘진님의 음악 말고는 참으로 맘에 드는 1부였습니다.
2부의 시작이었던 손정범, 박종해 군의 호두까기 인형은, 두 사람의 피아노로 듣는 연주가 처음이라 굉장히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피아노 버전은 참으로 매력적이더군요. 다만, 아래에 어느 분께서도 지적하셨다시피 귀에 거슬릴 정도로 주선율 쪽에서 실수가 많았던 것이 조금 아쉽네요. 제가 부족하여 잘 못 들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자주 미스터치 혹은 아예 음을 건너뛰는 것 같아 아주 마음에 드는 곡을 듣는 와중에 자주 몰입이 깨져 안타까웠더랬습니다. 이 날 첫 공연을 했다는 Dr.L 의 음악은 선율도 매력적이고, 악기 편성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저로서는 처음 접하게 된 피아노와 오보에 바순의 트리오를 거쳐 임철호 테너의 공연은 제가 이 날 가장 즐긴 순서 중에 하나였습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신다더니 어찌나 멋진 무대매너와 노래 솜씨로 관객들을 사로잡으셨는지요. 유명 성악가들의 유명 아리아들을 모아 놓은 작은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오페라를, 클래식을 접하게 되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좋았습니다. 특히 라보엠에서 "그대의 찬손"을 부르실 때, 옆에 있는 남자친구의 손을 괜히 한 번 잡아보았지만 - 이 사람은 그 노래의 제목이 "그대의 찬 손"인지도 모르고, 어떤 줄거리를 가진 노래인지도 모르니 그저 제 얼굴을 멀뚱이 쳐다보기에 좀 웃었답니다. 당시 고조되어 한 열기 하던 공연장 덕분에 찬 손이 아니라 완전히 땀범벅의 축축한 손이었던 데다, 더워... 손을 놔줘... 하는 텔레파시가 마구 전해져와서 말입니다 -_-ㅋ
임철호님의 공연 외에 또 가장 즐기고 빠져들었던 김혜진, 김민지, 김태형의 브람스 공연. 아 정말 몸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몰입했던 공연입니다. 세 연주자들이 팽팽하게 뿜어내던 에너지가 어찌나 강렬하고 깊이 있던지. 세 사람의 조화도 너무나 좋았고, 한 명 한 명의 연주도 너무나 인상깊었던지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독주도 따로 듣고 싶다는 열망이 들었더랍니다. 이 날의 피날레로 정말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생각하였으나, 공연에 늦게온 진보라팀이 피날레를 장식하게 되었지요. 베이스와 퍼커션의 연주가 참 좋았습니다.
아... 그러나 저는 감히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3부였다고 주장하렵니다. 앞의 공연들도 물론 좋았지만, 와인과 치즈를 먹으며 훨씬 넓어진 공연장에서 편하게 이리저리 주저앉아 피아노 배틀을 감상한 3부는 그저 신선놀음이었다고 말입니다. 2부가 끝난 후 가신 분들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적당히 와인에 취해 한 명씩 돌아가면서 흥에 취해 라흐마니노프, 쇼팽을 연주 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뒤에서 조용히 와인을 마시던 김선욱님까지. 술에 취해 사람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기분대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다리 뻗고 편히 앉아서 코앞에서 보다니요. 손가락 놀림도, 신발도 없이 양말만 신은 맨발로 밟는 페달의 움직임과 피아노의 울림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 곳에서 숨을 죽이고 그들의 유흥을 바라 보았습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곡은 화려한 기교들이 난무하는 곡들 사이에서 조용히 맑게 울려퍼지던 김선욱님의 모차르트. 트로메라이. 음을 하나하나 정성들여 세공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짧은 단 하나의 음표도 절대 소홀히 넘어가지 않는 정직함이 맑고 투명한 깊이감을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음의 모든 진동까지 다 멈춰진 후에야 손가락을 떼는 그 집중한 모습에 나도 숨을 못 쉬고 바라보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한숨이 포옥 나오더랍니다. 와인을 들고 피아노에 다가가서는 "이거 뭐 피아노 배틀 같네요"하고 웃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네요.
덕분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고 있지 못하다가 전철이 다 끝난 후에야 간신히 버스로 집을 향했습니다. 마지막의 여운이 특히 더 좋았기에 감동적인 하우스 콘서트였습니다. 확실히 사람이 적으니까 좀 더 여유롭고 좋은 분위기긴 하더라구요^^; 피아니스트들도 훨씬 편하고 여유롭게 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구요.
좋은 자리 만들어주신 하우스콘서트 측에 감사드립니다. 이런 좋은 공연을 또한 좋은 곳에 쓰신다 하니 관람한 입장에서도 기분이 더 좋습니다. 또 다른 좋은 음악으로 다시 뵙길 기다리겠습니다.
먼저 가신 분들을 위해 동행이 찍은 사진들을 몇 장 올려봅니다. 후반부의 피아노 배틀..^^